또 한번의 결단 | 고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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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12-28본문
성도 여러분, 어느덧 2025년의 마지막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어떤 감회들이 스쳐 지나가십니까? 누구에게는 참으로 '버텨낸' 한 해였을 것이고, 누구에게는 하나님의 기적을 맛본 감격의 한 해였을 것입니다. 연초에 세웠던 수많은 계획과 다짐들, 뜨겁게 기도했던 제목들… 그중에는 열매를 맺은 것도 있지만, 여전히 부끄러움으로 남아있는 빈손의 모습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연말이 되면 '망년회(忘年會)'라고 해서 잊어버리는 것에 집중합니다. 힘들었던 일, 괴로웠던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하죠. 그러나 성도는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억하고 매듭짓는 사람입니다.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는 이유는 마디마디마다 '매듭'을 짓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예배가 우리 인생의 영적인 매듭을 짓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고린도 교회가 있던 고린도는 당시 로마 제국에서 가장 번창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돈과 정보가 모이는 곳이었죠. 그곳에 세워진 고린도 교회는 아주 역동적이었습니다.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고전 1:5)했고, 성령의 은사도 어느 교회보다 뜨겁게 나타났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부흥하는 교회, 능력 있는 성도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심각한 병이 들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타락한 문화가 교회 안으로 그대로 들어온 것입니다. 파당을 지어 싸우고, 음행이 벌어지고, 은사를 자랑하며 서로를 비난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자만함'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은사를 많이 받았으니 믿음이 좋다고 착각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는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 지점을 지적합니다. "너희가 은사가 많으냐? 지식이 풍부하냐? 그것이 너희의 믿음을 증명하는 게 아니다. 속지 마라. 지금 너희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해 동안 직분이 있었고, 봉사를 많이 했고, 기도의 체험이 있었다는 것이 내 믿음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아주 날카롭고도 엄중한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가 정말 믿음 안에 있느냐?" 이 질문 앞에 서서, 우리가 새해로 넘어가기 전 반드시 통과해야 할 '또 한 번의 결단' 세 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Ⅰ. 점검하라: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점검하고"
첫 번째 결단은 '점검'입니다. 우리는 한 해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작 가장 중요한 '내 영혼의 위치'는 확인하셨습니까? 본문은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를 점검하라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매일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 전 제가 차를 운전하는데,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끼익- 끼익-" 하고 소름 끼치는 쇳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괜찮겠지' 하고 넘겼는데, 소리가 점점 커지더군요. 결국 정비소를 찾아갔습니다. 정비사가 바퀴를 뜯어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합니다. "성도님, 큰일 날 뻔했습니다. 브레이크 라이닝이 다 마모되어서 이제는 쇠붙이끼리 닿고 있어요. 이대로 고속도로라도 달렸으면 브레이크가 안 들어서 정말 위험했을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점검의 중요성입니다. 브레이크 패드가 닳아가는 것은 겉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휠 속에 감춰져 있죠. 하지만 이상 신호를 무시하고 점검하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해 대형 사고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1년 동안 세상을 질주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인내'라는 라이닝이 닳아 없어지고, '겸손'이라는 부품이 마모됩니다. 내 영혼에서 원망의 소리, 불평의 쇳소리가 나고 있는데도 "나는 원래 이래", "바빠서 그래"라며 방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한해의 끝자락에서 우리에게 이런 기도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주님, 더 큰 영적 사고가 터지기 전에 오늘 저를 점검대에 올립니다. 마모된 내 열정을 교체하게 하시고, 녹슬어버린 내 기도를 다시 기름칠하게 하옵소서. 멈춰야 할 죄의 자리에서 멈출 수 있는 영적 브레이크를 다시 점검하겠습니다.“ 이 점검이 필요합니다.
Ⅱ. 시험하라: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
여기 시험이란 말은 금속의 순도를 정밀하게 측정한다는 뜻입니다. 가짜는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불속에 들어가면 타버립니다. 진짜 금은 불속에서 그 가치가 증명됩니다. 올 한 해 여러분에게 닥쳤던 크고 작은 시련들은 사실 하나님이 내주신 '시험지'였습니다. 건강의 문제, 관계의 아픔, 경제적인 위기 앞에서 여러분은 어떤 답을 써 내려가셨습니까? 원망과 불평의 답안지를 쓰셨습니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신뢰합니다"라는 믿음의 답안지를 쓰셨습니까? 내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잣대로 나를 시험해 봐야 합니다. 찾아보아야 합니다. 내 고집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며 한 해를 보내지는 않았는지,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말씀을 이용하지는 않았는지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검증해야 합니다.
여러분, 세계적인 기업들이 신제품 하나를 시장에 내놓기 위해 얼마나 혹독한 과정을 거치는지 아십니까? 스마트폰 하나를 만들면 수만 번을 떨어뜨려 보고, 영하 40도의 추위와 60도의 폭염 속에서도 작동하는지 테스트합니다. 자동차는 일부러 벽에 들이받는 충돌 테스트를 수백 번 반복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요? 실제 상황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제품은 가짜요, 쓰레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거친 현장에서 작동하는 '실전용'이길 원하십니다. 우리 시앙인에게 가장 무서운 영적 질병은 '타성'과 '굳어진 습관'입니다. 신제품이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공장에서 기계적으로 찍혀 나오기만 하면, 어느 순간 결정적인 결함이 생겨도 모른 채 출고됩니다. 우리 신앙도 "예전부터 이랬으니까", "남들도 다 이렇게 하니까"라는 생각에 갇히는 순간 성장이 멈추고 썩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고린도전서 10장 12절을 통해 뼈아픈 지적을 했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 '나는 은사도 많고, 지식도 풍부하니 이미 신앙의 높은 경지에 서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서 있다'고 믿는 자만심이 그들을 넘어뜨리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내가 집사 노릇을 몇 년인데", "내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의 영적 성장은 멈춥니다. 성장이 멈춘 신앙은 고인 물처럼 썩게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습관의 굳은살을 제거하십시오. 오래된 습관은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지만, 영적인 감각은 무디게 만듭니다. 신제품이 매년 업그레이드되어야 시장에서 살아남듯, 우리의 신앙도 매일 말씀 앞에서 새롭게 시험받고 갱신되어야 합니다. * 넘어짐의 신호가 있습니다. 혹시 올 한 해 "나 정도면 괜찮은 신앙인이지"라고 스스로 만족하며 남을 판단하지는 않았습니까? 그것이 바로 넘어지기 직전의 위험한 신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과거의 훈장'에 머물러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여러분, 올 한 해 여러분의 믿음은 고난이라는 '충돌 테스트'를 통과했습니까? 유혹이라는 '고온 테스트'에서 녹아내리지 않았습니까? 만약 내 신앙이 주일 예배당 안에서만 작동하고,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세상의 압력 속에서는 먹통이 된다면, 그것은 리콜 대상인 '불량 신앙'입니다. '시험하라'는 단어는 나를 정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믿음이 가짜가 아님을,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실제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발견해내라는 격려입니다.
Ⅲ. 확증하라.
여기 5절 하반절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부드러운 권면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마치 칼을 뽑아 들듯 엄중하게 선포합니다.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스스로 확증하라. 만약 증명해 내지 못한다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이 부분 버림 ‘받는다’는 (아도키모스)는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 '성도의 견인(하나님이 끝까지 붙드심)' 교리는 매우 소중합니다. 따라서 고후 13:5과 고전 9:27에 나오는 '버림받음'을 구원의 취소가 아닌, '사역적 자격 상실' 혹은 '상급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단어를 접할 때 "혹시 내 구원이 취소되는 것 아닐까?"라는 두려움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은 결코 우리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도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은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여기서 바울이 두려워한 것은 구원에서 탈락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생 복음을 전하며 살았는데, 정작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너는 내 일을 맡기기에 부적격하구나"라는 판정을 받는 것, 즉 '사역자로서의 자격 상실'과 '상급의 상실'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쓸모없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극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금메달을 따기 위해 평생을 훈련한 선수가 도핑 테스트에서 걸려 자격 박탈을 당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선수 자격은 유지될지 몰라도, 그에게 그동안의 훈련과 경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은 받았을지 모르나,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없고 그분의 통치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쓰실 수 없는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맙니다.
한 해 동안 우리 삶에 예수님의 향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함량 미달' 판정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마음껏 쓰시고 싶어도 쓰실 수 없는 상태, 그것이 바로 성도가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모습인 '버림받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1년 동안 교회 마당을 밟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 하시는가, 아니면 내 이름만 걸어놓은 빈집인가를 확증해야 합니다. 주인이 없는 집은 폐가가 되어 귀신이 끓고 무너져 내립니다. 우리 영혼이 그 지경이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너희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고 묻습니다. 내 안에 예수가 계시다면 반드시 증거가 나타납니다. 내 가치관이 변하고, 내 입술의 언어가 변하고,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변해야 합니다. 만약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바울의 이 무서운 경고—"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앞에서 벌벌 떨어야 합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비의 결산일'입니다. 버림받은 상태로 새해를 맞이하지 마십시오. 가짜 신앙의 옷을 찢어버리고, 다시금 내 마음의 왕좌를 예수 그리스도께 내어드려야 합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의 삶을 통해 나타나시도록 나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연말 결산의 목적은 후회가 아닙니다. 정죄가 아닙니다. 다시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앞에 서겠다는 결단/다시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겠다는 결단/다시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겠다는 결단입니다. 한 해 동안 우리는 넘어지기도 했고, 후회할 선택도 했고, 신앙이 느슨해진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올해의 실패가 내 인생의 결론은 아니다 하나님은 늘 “마지막 장”이 아니라 “다음 장”을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다시 나와 함께 가겠느냐?” 이 질문 앞에서 “주님, 다시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또 한 번의 결단입니다. 한 해의 끝에서, 믿음의 자리에 다시 서십시오. 오늘 말씀은 우리를 무겁게 하지만 동시에 소망을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점검하라는 →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시험하라는 → 포기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확증하라는 → 다시 세우기 위함입니다.
한 해의 끝에서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붙잡고 가면 좋겠습니다. “나는 여전히 믿음 안에 있다” ????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다” “그래서 나는 다시 결단한다” 이 결단 위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한 해를 은혜로 열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한 해의 결산을 지나 또 한 번의 결단의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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