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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시대를 향하여 (35)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 행27:14-2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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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12-07

본문

 

흔히들 인생을 바다로 많이 비유합니다. 이 인생의 바다는 불안과 공포를 안고 있습니다. 유리같이 맑은 바닷길을 순풍에 돛을 달고 힘차게 달려가면서도 선원들의 마음 속에는 "폭풍이 불어 닥치지 아니할까?" 하는 걱정과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재 우리의 생활이 편하고 걱정이 별로 없어도 마음 한 구석에는 형통한 것이 오히려 불안의 요소가 됩니다. 우리 중에 어떤 분은 이미 인생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와 있든지 간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인생의 바다 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바다의 풍랑에 시달리며 멀미를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을 태운 배가 로마로 향하던 중, 피할 수 없는 광풍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배안에는 276명을 태운 선박 한척이 로마로 향해 떠나고 있었습니다. 배안엔 로마로 호송되는 죄인들과 호송 군인들 그리고 상인들까지 가득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배가 광풍을 만나 파산 직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광풍은 대작하고(14), 풍랑은 극심하여(18), 살아날 가망은 거의 없는 절박한 지경이었습니다(20).

 

그야말로 생과 사의 씨름, 대자연과 인간의 싸움이 전개된 것입니다. 싸움은 처절했습니다. 풍랑은 인간이 행복으로 여겼던 모든 화물과 선박 기구들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276명은 죽음의 계곡을 여러차례 내려갔었을 뿐 아니라, 공포와 전율에 떨기를 14일간이나 계속했습니다. 이같이 처절한 생지옥 같은 고난 중에 지위 명예 부귀영화같은 세상적인 것들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고, 가치도 효험도 없었습니다. 배가 부서지고 모든 것이 파괴될 것 같은 절망적인 순간, 바울은 이 폭풍을 어떻게 뚫고 나갔을까요? 하나님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그 위대한 과정 속에는, 이처럼 우리를 좌절시키는 고난의 파도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파도를 뚫고 새 시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비결이 바로 오늘 말씀 속에 담겨 있습니다.

 

 

 

. 믿음의 사람은 위기 앞에서 인간의 절망을 넘어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합니다. (18-20) 성도 여러분, 바울 일행이 맞이한 이 유라굴로 광풍은 단순한 폭풍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모든 힘과 희망을 깡그리 앗아가는 대재앙이었습니다. 18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은 그들이 어떤 단계를 거쳐 총체적인 절망에 이르렀는지를 아주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았던 소유를 포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배가 풍랑으로 심히 고생하자, 이튿날 가장 먼저 한 일은 짐을 바다에 던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짐들은 단순한 짐이 아닙니다. 이 항해를 통해 로마에 가서 팔아야 할 상인들의 생계의 전부, 미래에 재산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목숨이 위태로우니, 재산의 가치보다 생존이 우선이 된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 소유'를 포기하며 발버둥 쳤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8) 그럼에도 풍랑이 그치지 않자, 사흘째 되는 날에는 아예 배의 기구, 즉 배를 조종하고 수리하는 도구들까지 바다에 내던져 버립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이 배를 더 이상 조종할 수 없다!'는 인간적인 통제력의 완전한 포기를 의미합니다. 인간이 가진 지혜가 이 광풍 앞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도구가 없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 절망의 정점은 20절에 나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여기에 주목하십시오. 고대 항해에서 해와 별은 나침반이자 지도였습니다. 그것 없이는 내가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방향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희망이 상실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게다가 큰 풍랑은 그대로였습니다. '이제는 잠잠해지겠지'라는 자연적인 기대마저 무너진 것입니다. 결국 구원의 여망마져 없어졌다에서 이 여망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강한 표현입니다. 이 말은 살 소망이 완전히 끊어졌다.” “혹시나 하는 기대조차 사라졌다.” “이젠 끝이다이렇게 죽는구나이 말은 마지막 남아있던 실낱같은 희망조차 다 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의 삶속에 이런 광풍이 불어닥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인간이 가진 교만과 욕망 때문입니다. 910

 

누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9절에 이미 금식하는 절기가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지금 출항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 바람의 계절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왜 출항했습니까? 빨리 로마로 가야 한다는 욕망,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남기려는 욕망, 일정을 앞당기려는 욕망, 이 욕망이 사람들의 판단을 흐려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합니다. 10절에 여러분, 이번 항해가 훼손과 큰 손해가 있을 줄 아노라.”

 

그러나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가볍게 여깁니다. 영적인 경고를 무시해버린 것입니다. 욕망이 앞설 때 인간은 현실을 볼 수 없습니다. 보여도 보지 못합니다. 들려도 듣지 않습니다. 욕망이 눈을 가리면 위험가능성처럼 보이는 착각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더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간 것은 교만때문입니다. 11절에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여기서 인간의 교만이 드러납니다. 경험 많은 선장의 말, 배를 운영해 온 선주의 말, 로마 군인의 권위, 모두가 바울의 말보다 더 신뢰할 만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경험지식이 이번 광풍 앞에서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선장은 경험을 믿었고, 백부장은 권력을 믿었고, 선주는 재산을 믿었습니다. 교만이 인간을 광풍 앞으로 밀어 넣고, 교만이 인간을 광풍 속에서 무력하게 만듭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세요. 경험도, 지식도, 힘도, 재정도 광풍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2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내 말을 들었더라면이 짧은 한마디에 모든 비극의 원인이 담겨 있습니다. “내 말을 들었더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를 들었더라면.” “말씀을 귀하게 여겼더라면.”

 

광풍이 다가오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불순종입니다. 경고를 들었지만 무시했고, 말씀을 들었지만 행동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알면서도 다른 소리에 귀를 열었습니다. 불순종은 광풍을 부릅니다. 불순종은 가정도 흔들고, 교회도 흔들고, 인생의 방향도 잃게 만듭니다. 불순종은 작은 시작처럼 보여도, 결과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인생은 광풍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동안 가졌던 모든 것이 한방에 날라갑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 믿음의 사람은 절망 앞에서 담대히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21-25


모두가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하고 기진맥진하여 절망 속에 빠져 있을 때, 누가 일어났습니까?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바울은 이 절망의 한가운데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너희가 내 말을 안 들어서 이렇게 됐지!'라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두 가지의 약속을 전합니다.

 

첫째는 22절에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으리라. 다만 배만 잃으리라."것과 두번째는 23-24절에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자를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진정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주변의 환경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평안과 안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바로 25절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진노 가운데서도 긍휼을 거두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잘못한 것을 하나님이 내버려 두겠다, 끝이다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폭풍 한복판에서 약속을 주시고, 살 길을 주시고, 구원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불순종했는데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광풍을 허락하셨지만, 그 속에서 살길을 여시는 하나님. 이 은혜가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은혜라고 해서 하나님이 잘못된 길을 괜찮다고 덮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광풍은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너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하나님은 죄를 방치하지 않습니다. 방심한 채 계속 가면 결국 죽음이니까요. 광풍은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의 나팔입니다. 그러나 경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경고 속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긍휼의 손길을 펼치십니다. 광풍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한 흔들림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광풍 앞에서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광풍이 계속되는 동안 사람들은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배에는 경험 많은 선장도 있었고 항해 전문가도 있었고 로마 군인도 있었고 백부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광풍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이들이 깨달은 것은 단순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살 수 없다. 우리가 붙잡을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이 깨달음이 없으면 광풍 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광풍은 그들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만든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또 다른 두려움이 그들을 덮쳐옵니다. 여러분, 광풍 앞에서 처음 느낀 두려움은 죽음의 두려움이었습니다. “우린 죽는다.” “이 배는 끝이다.” 그런데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순간 사람들은 또 다른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이 이곳에 계신다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거대한 폭풍보다 더 큰 두려움. 배가 부서지는 것보다 더 깊은 떨림.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불순종을 아신 하나님이 그럼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광풍 속에서 길을 여시는 분임을 깨닫는 순간 사람은 자연스레 경외함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이 두려움은 파괴의 두려움이 아니라 회개의 두려움, 거룩 앞에서 떨리는 두려움,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두려움입니다. 광풍보다 더 큰 두려움. 그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 앞에서 느끼는 경외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광풍이 부는 바다 한 복판에서 두 번이나 외친 말이 있습니다. 바로 안심하라”(22, 25)입니다. 이 말은 그냥 마음 편히 가져라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바울은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시 세우십시오!”라고 외친 것입니다. “겁내지 말고 마음을 일으켜 세워라라는 의미입니다. 그냥 감정적인 위로가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영적인 용기를 회복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말씀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네가 고난당하는 그 현장 속에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너는 결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믿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부모가 자기 자녀가 어려울 때 가만히 있겠습니까? 내버려 두지도, 가만히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그의 백성이라는 신분을 한 시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나의 머리카락까지도, 내 코의 호흡까지도, 내 마음의 생각까지도 하나님께서 일일이 간섭하실 만큼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굴복시키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주저앉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약하게 만들겠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이제 정신 바짝 차리고 남은 후반기 12월 한달,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항해를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바울 한사람으로 배안의 통곡이 기쁨으로 그리고 좌절에서 희망을 가지고 일어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라굴로 광풍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배 안에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며, 붙잡고 있던 것이 모두 내 인생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풍랑이 몰아치자, 배 안의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미래라고 믿었던 것재산, 장비, 먹을 것, , 계획그 모든 것을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그 순간 깨닫게 됩니다. “붙잡고 살았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이게 바로 오늘 우리 시대의 모습 아닙니까? 물질이 많으면 든든할 줄 알았고, 문명이 발전하면 안전할 줄 알았지만, 요동 한 번 치는 바람 앞에서 사람은 순식간에 두려워지고, 우리가 쥐고 있던 것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립니다. 그러나, 그런 폭풍 속에서도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내가 믿는 하나님의 사자가 오늘 내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유라굴로를 지나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너는 무엇을 붙잡고 사는가?” 그 붙잡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면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12월은 십자가의 사랑 앞에, 그 은혜 앞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가지고 너는 오늘 누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겠는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풍랑은 우리를 흔들지만, 나눔은 우리를 다시 세우고, 사랑은 우리를 다시 일으킵니다. 이 성탄에 작은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진짜 믿음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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