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속에 드리는 감사 / 역대하 20: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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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11-09본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감사의 달을 맞아 우리의 신앙을 깊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은 어떤 상황 속에 서 계십니까? 혹시 삶의 거센 파도 앞에서 홀로 외로이 서 있지는 않으신지요? 아니면 눈앞의 문제들 때문에 하나님께 시선을 두기보다, 세상의 방법과 내 힘을 먼저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가 정말 어려울 때,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방향 설정 하나가 우리의 삶의 결과를 완전히 바꿉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인물은 바로 유다의 여호사밧 왕입니다. 그는 참 귀한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부모, 특히 아버지 아사는 하나님을 신뢰했던 왕이었죠. 여호사밧 자신도 왕위에 오른 초기에는 주변 환경이 어떻든지 상관없이 하나님만을 신뢰했던 왕이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신앙의 출발입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믿음의 왕이었던 그런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과 타협하는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는 주변 강대국들과 정략적인 동맹을 맺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딸을 악명 높은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가와 정책적으로 결혼시키는, 아주 위험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세상과의 타협은 결국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할 왕이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평안을 구했을 때,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나라가 무너지게 되는 엄청난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여호사밧의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이 바로 오늘 감사의 달을 맞이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자리에 서 있습니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여호사밧처럼 세상적인 동맹과 방법을 찾아 발버둥치고 있지는 않은가요? 하나님을 신뢰했던 처음 마음을 잃고, 하나님보다 내 지혜와 내 능력을 앞세워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가 최악의 위기에 몰렸을 때, 과연 그는 어떻게 다시 시선을 돌리고 그 엄청난 위기를 극복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감사'자가 되었는지! 이것을 대하 20장 20절에서 23절 말씀을 통해 깊이 있게 나누어 보려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위기 속에서 터져 나오는 감사가 우리의 삶에 어떤 기적을 가져오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Ⅰ. 위기의 순간, 무엇을 신뢰해야 하는가? (20절)
눈에 보이는 위기보다, 변함없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신뢰할 때 진정한 감사가 시작됩니다. 여호사밧 왕은 적군을 향해 진군하기 전, 백성들 앞에 서서 이렇게 외칩니다. 20절 말씀을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이에 백성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여기서 여호사밧 왕이 두 번이나 강조한 단어가 바로 '신뢰하라'입니다. '신뢰'는 단순히 '믿는다'는 감정의 수준을 넘어섭니다. 신뢰는 '하나님을 믿으니, 내 삶 전체를 그분께 맡기고 그분의 약속에 의지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보세요. 여호사밧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 절망의 문제를 끌어안고 위기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백성들에게 금식기도를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성전으로 몰려나와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아마 교회 안에는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기도를 모르는 게 아니라, 기도의 능력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기 본문 속 여호사밧 왕을 보십시오. 적군이 밀려올 때 그는 싸움 준비보다 먼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는 아는 기도를 넘어 매달리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왜요? 그는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영적 자세입니다. 성경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홍해 앞에서 절망의 소리가 가득할 때, 모세는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그 한 번의 기도가 홍해를 갈랐습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열쇠입니다.
한나를 보십시오. 눈물의 여인 한나가 성전 바닥에 엎드려 기도할 때, 사람들은 그녀를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의 기도 속에서 사무엘이 태어났습니다. 기도는 절망의 자궁에서 새 생명을 잉태하는 능력입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사자굴 앞에서도 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그를 살렸고, 기도는 바벨론의 심장부에서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기도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꾸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 한 마디 기도가 인류의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기도하셨는데, 우리가 어찌 기도 없이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왜 기도하지 않느냐?”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은 야하시엘이라는 사람을 보내셔서 응답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15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그리고 17절을 보면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Ⅱ. 위기 속에 드리는 감사는 승리의 통로입니다 (21-22절)
21절에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총과 칼을 든 군인들 대신, 무기 없는 '찬양대'를 선두에 세웁니다. 그들은 "우리가 이기게 해 주세요!"가 아닌,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선포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는 칼도, 창도, 방패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가 들고 나간 것은 단 하나—감사의 노래였습니다. 여기 보면 이들은 인간적으로 이 싸움을 이길 확률이 낮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싸움은 흔히 싸우는 전술 대형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먼저, 받은 은혜의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병이 나았을 때, 일이 잘 풀렸을 때,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감사합니다!” 하는 것 이건 너무나 당연한 감사지요. 이스라엘 백성도 홍해가 갈라지고 난 뒤에야 손에 소고를 들고 찬양했습니다. 그건 ‘받은 후의 감사’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앞으로 주실 은혜를 미리 감사하는 것,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취적 감사’입니다. 선취적 감사는 곧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미리 드리는 감사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자의 고백입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여호사밧 왕이 큰 전쟁 앞에서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찬양하게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가 아니라 시작하기 전에 감사했습니다. 그 믿음의 감사가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고, 하나님이 친히 싸워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문제와 위기가 있습니다. 가정의 어려움, 건강의 문제, 경제의 문제 — 이럴 때 대부분은 “문제가 해결되면 감사하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일하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 감사합니다.” 이게 바로 선취적 감사입니다. 감사는 결과가 아니라 믿음의 표현입니다. 감사는 환경이 아니라 관점의 변화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선을 이루실 것을 믿는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받은 은혜의 감사는 은혜를 지키고, 받을 은혜의 감사는 은혜를 불러옵니다. 오늘 여러분의 입술에서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는 믿음의 고백이 되길 축복합니다. 여러분, 여호사밧의 감사는 응답 후의 감사가 아니라, 응답 전의 감사였습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도 않았고, 승리의 결과도 보지 못했지만 그는 미리 감사했습니다. 이걸 우리는 ‘선취적 감사’라고 부릅니다. ‘선취’라는 건 ‘미리 취한다’는 뜻이에요. 아직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신 것 같아도, 이미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믿고 먼저 감사하는 것—그게 바로 믿음의 감사입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외치며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이건 단순한 감정의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한 감사였습니다. 응답을 보고 감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 습니다. 하지만 응답 전에 감사하는 사람, 그 사람은 이미 믿음의 승리를 얻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이런 선취적 감사가 회복되길 축복합니다.
Ⅲ. 감사가 시작될 때, 하나님이 복병으로 일하신다! (22–23절)
22절 말씀을 보세요.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사…” 자, 여기서 ‘복병’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히브리어의 뜻은 ‘숨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는 자’, “보이지 않게 준비된 하나님의 전사들”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그들은 감사 찬양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찬양이 울려 퍼질 때, 하나님이 이미 준비해 놓으신 복병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복병은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신 은혜의 사람들, 상황, 기적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은 이미 일하고 계신 거예요. 감사할 때 하나님은 “이제 때가 되었다!” 하시며 그 복병들을 움직이십니다. 여러분, 복병은 ‘우연’이 아닙니다. 복병은 ‘하나님의 타이밍’입니다! 내가 보지 못할 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당신의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쉽게 무너지는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의 복병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 같고, 기도해도 반응이 없으니까 “하나님, 안 계신가 보다…” 하며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잊지 마세요.하나님은 침묵 속에서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사하기 시작할 때, 그동안 숨어 있던 복병이 움직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는 기적의 씨앗입니다!” 여러분이 감사할 때, 그 씨앗이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자라기 시작합니다. 겉으론 아무 변화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은 복병을 준비하시고, 사람을 움직이시고, 길을 여십니다. 여호사밧의 백성이 찬양했을 때 복병이 일어나 적들이 서로 싸워 멸망했듯이, 오늘 여러분이 감사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 인생의 싸움터에서 일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포기하고 싶은 상황이 있습니까? 미래가 안 보이고, 현실이 너무 막막합니까? 그때 바로 감사할 때입니다. 감사는 현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믿는 믿음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의 삶 곳곳에 “복병”을 숨겨 두셨습니다. 그 복병은 때로는 한 사람의 격려, 때로는 닫혔던 문이 열리는 순간, 때로는 눈물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감사하세요. 그 감사가 기적의 씨앗이 되어 하나님의 복병을 깨우는 신호가 됩니다. 눈앞의 현실이 아무리 거칠어도 감사로 버티십시오. 감사로 믿음을 지키십시오. 그때 하나님이 숨어 계시던 복병을 일으켜 여러분의 인생 전쟁을 대신 싸워주실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23절입니다.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산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하나님께서는 적군을 상대로 직접 칼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적군들 사이에서 스스로 혼란을 일으켜 자멸(自滅)하게 하셨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해야 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믿음으로 찬양하고 감사하며 전장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몫은 '순종과 감사'뿐이었고, 싸움의 몫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전쟁터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싸움이 끝나 모두 죽어 있는 시체들만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싸우지 않고, 승리의 전리품을 거두어들이는 3일이라는 시간 동안 감사의 찬양만 드릴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사밧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삶의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발버둥치면 칠수록, 우리는 더 지치고 좌절할 뿐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우리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맡김의 증거로서 '감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자녀의 문제, 내 사업의 위기, 내 건강의 적신호 앞에서, "주님! 내가 비록 어떻게 할 바를 알지 못하나, 주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심을 믿고 감사합니다!"라고 선포해 보십시오. 우리가 감사의 옷을 입고 나아가는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어 우리의 문제를 친히 해결해 주시는 시작점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할 조건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지금 내 눈앞의 현실이 막막하십니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고 지금, 이 순간, 선취적 감사를 선포하십시오. 이것은 단순한 긍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담은 가장 강력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음 주 추수감사주일에 우리가 드려야 할 감사는 어떤 감사입니까? "나의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 그분 한 분을 신뢰하니 감사합니다"라는 믿음의 감사입니다. 이 믿음의 감사를 선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큰 위기를 '브라가 골짜기', 즉 찬양의 골짜기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사방에서 평강이 임하는 영원한 감사의 삶을 누리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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