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일 설교문 - 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안두익 댓글 작성일25-03-02본문
이때를 위함이 아닌가? - 삼일절 에4:14-16. 2025. 3/2
지금으로부터 106년 전, 우리나라가 일본의 통치를 받고 있던 시절입니다, 독립을 간절히 갈망하던 우리 선조들은 일본의 총칼 앞에서도 ‘대한 독립’을 외치며 거대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3.1운동입니다. 우리는 오늘 빼앗긴 조국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우리 선조들의 피가 맺힌 3.1절을 생각하며 기념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나라의 주권과 언어와 영토를 빼앗긴 그 아픔을 지난 36년간 정말 뼈가 저리도록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박은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3.1 운동 당시 200여만 명이 참가하여 7,509명이 사망, 15,850명이 부상, 45,306명이 체포되었으며, 헐리고 불탄 민가가 715호, 교회가 47개소, 학교가 2개소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삼일 독립운동이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 사랑한 애국애족 운동의 정신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당시 1600만명의 국민 가운데 1.3%가 한 20만명 정도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수가 당시 민족을 일깨우고,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영적 리더였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이 운동의 준비과정과 조직, 그리고 온 민족이 참여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독립선언서 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 인사였습니다. 당시 조선 총독부가 남긴 비밀 문건 속에는 "이 민족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조선의 교회다"라는 기록을 남길 정도로 기독교인들은 그 시대를 이끌어 갔습니다.
당시 한국 교회는 민족에게 희망을 던져 주었습니다. 국민의식을 바꾸었습니다. 미신을 타파하고, 신분제도를 철폐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하고 모든 백성은 평등하다는 사실을 전파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민족의 고난을 대신 지고 국민을 계몽시키는 교육을 일선에서 감당하였습니다. 100년 이상 된 근대화된 학교시설은 대부분 기독교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등 유명 사학들이 신앙인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신식병원은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동산병원, 예수병원 등 병원을 세워 백성을 살렸습니다.
3.1 운동은 이 민족과 심지어 당시 우리 주변의 나라에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3.1운동이 있은지 10주년이 되던 1929년 아시아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타고르는 이렇게 한국을 노래했습니다. "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등불의 하나였던 조선인,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빛이 되리라. 무한히 퍼져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전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조선이여 이제 깨어나소서." 이 3.1운동이 전세계에 자유에 대한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민족을 이끌던 우리 한국교회는 키가 고장난 배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세계 기독교 역사상 부흥의 기적을 이루었던 한국교회는 지금 선교 140주년을 맞이하여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실을 다시한번 직시하면서 어떻게 하면 한국 기독교가 이 민족을 살리는 역할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스더가 살던 시대는 유대 민족에게 매우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친 후에도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거기다 하만이라는 사람이 유대 민족을 말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하만의 술수에 속아 바사왕 아하수에로 왕이 나라 방방� �곡에 조서를 내렸습니다. 에3:13절에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이 당시 70년 포로때 1차 2차 귀한때 고국으로 간 사람을 제외한 유대인들이 10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제 꼼짝없이 전멸당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맞게 된 것입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모르드개는
Ⅰ. 이때를 위함인지 누가 알겠느냐? (14)
14절에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이 말씀이 그의 심령에 꽂혔습니다. 내가 왜 왕후가 됐을까? 왕후가 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왕후가 됐던 과정을 다시 생각하게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자기를 왕후가 되게 하신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야기합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만물을 그 정해진 목적으로 통치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말합니다. 마 10:29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포로의 후손으로 왕후가 될 수 없는 가운데 왕후가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우리를 지금 있는 자리에 세워두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 기 위해 일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왜 나를 이 자리에 두셨는지, 왜 내게 이것을 전공하게 하셨는지, 왜 내게 이런 은사를 주셨는지...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 자리에서 또는 이때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동성교회에 지체로 삼으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에스더가 포로의 후손으로 왕후가 될 수없는 가운데 왕후가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왜 아하수에로 왕이 주연을 베풀다가 왕후를 불러내려했고, 왕후가 그 말을 듣지 않아서 폐위되었을까요? 왜 에스더가 왕후간택에 참여했을 때 헤개라는 책임자가 에스더를 좋게 보고 특별한 배려를 했을까요? 왜 왕이 에스더를 간택에 나온 모든 여자들 중에 가장 사랑하게 됐을까요? 왜 모르드개가 간택과정 중에 왕 암살음모를 알게 됐고, 이것을 왕후 에스더가 왕에게 알려 왕을 살리게 됐을까요?
모르드개는 이 모든 과정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에스더를 왕후로 세우신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 무엇일지를 생각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왕후인 에스더를 통해서 오늘의 이 유대민족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는 이 말씀 앞에 지금의 탄핵 정국 앞에 내가 해야 할일은 무엇입니까? 탄핵 정국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믿음과 분별력, 그리고 기도의 자세입니다. 혼란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감정적 반응이나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시대적 흐름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이 민족의 아픔과 상처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고난 속에서 살아온 민족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 나찌에 의해서 600만명이 학살된 것을 기념하여 예루살렘에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야드바심’이라고 붙였습니다. ‘야드바심’이란 말은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그 기념관 입구에는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백악관 건너편에도 유대인 학살기념관을 세웠습니다. 그곳에 갈 때마다 후손들이 그 아픔과 고통의 순간들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어려움을 잊고 살면 망한다는 것을 뼈져리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고 살고 있진 않습니까? 일본 사람들이 우리 한국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사건이 터지면 쉽게 흥분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곧 잊어버리는 근성을 가진 민족이라� �� 것입니다. 잊어버리면 아픔의 역사는 반복됩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압제를 받은 그 고통에서 이 땅에 해방을 위해 비폭력으로 삼천리 방방 곡곡에 태극기를 들고 외치며 수많은 우리의 선열들이 죽음으로 항거한 이 3.1절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날 이후 35년 동안 36만3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전쟁에 끌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20여만 명의 이 땅의 젊은 딸들이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독립을 꿈꾸던 수많은 애국자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받아야 했고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던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일본은 이 땅에서 수많은 문화재들을 약탈해 갔고, 우리나라의 문화를 말살하고 역사를 왜곡시켰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날을 잊을 수 있습니까? 지금 에스더는 자신이 왜 왕후가 되었는가를 깨닫고 난 뒤 달라졌습니다.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왕을 만나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왕 앞에 나가는 길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입니다.
Ⅱ. 죽으면 죽으리라 16절
이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에스더는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16절입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그것도 삼일동안 금식기도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왕궁에서 시녀들과 함께 삼일 동안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왕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죽음을 겁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결국 그는 금식과 기도 가운데 주님을 의지하고 임금님께 나아갔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하고 임금 앞에선 에스더의 절규가 무엇이었습니까?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왕후 에스더가 요구하는 소청은 부귀나 영화나 관능이 아니었습니다. 진멸 위기에 처한 자기민족을 구원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106년 전에 일어났던 삼일운동도 이 마음이었습니다. 남강 이승훈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그리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도중에 총독부 판사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피고는 항상 일한 합병에 불평을 품고 조선독립을 희망하였는가?” 남강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바가 있으니 어느 누가 조국의 흥왕과 종족의 번영을 바라지 아니하며 더욱이 남의 나라에 합병된 자기 나라의 독립을 바라지 아니하겠는가?”
우리 나라 안중근 의사가 할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가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장한 아들 중근이 보아라. 이제 너는 조국을 위해 죽을 것이다. 사형을 언도 받으면 항소하지 마라. < /span>네가 벌한 이들에게 용서를 구할 필요도 없고 법에 호소하여 더 길게 살 필요도 없다. 혹시 어미보다 먼저 죽는다고 불효라고 생각하지도 말라. 작은 의에 연연치 말고 큰 뜻으로 조국을 위해 죽어라. 그것이 어미의 소원이다”. 조국을 위해 죽은 안중근의 배후에는 이런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만일 안중근이 죽는데 어머니가 울며 불며 항소하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결국 안중근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항소하지 않고 놀라울 정도로 의연하게 감옥생활을 하다 순국했습니다.
Ⅲ. 우리가 가져야 할 3.1 정신
오늘날 대한민국도 정의와 공정성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사회는 분열되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대립하며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져야 할 3.1 정신은 진리 위에 서는 것입니다. 진리 없이 편 가르기와 감정적 대응이 난무하면 결국 사회가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정직과 정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정의를 외치는 것만이 아니라,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 성경적 가치로 점검해야 합니다.
당시 만세운동은 우리 민족역사 가운데 다시 찾아보기 힘든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연합입니다. 만세운동에 온겨레가 다 힘을 합해서 참여했던 것입니다. 우선 상해에 망명하고 있던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일본유학생들도 뜻을 같이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2.8독립선언 사건을 터뜨렸습니다. 이것이 삼일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도 서북지역에서 시작하여 서울, 호남, 영남, 강원 등 전국적으로 퍼져갔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던 지역감정 문제를 뛰어넘어 하나를 이루는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국내의 모든 정파와 세력들이 하나가 되어 참여했습니다. 후에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 정쟁을 일삼게 되었던 사람들도 이때만큼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양반후손과 천민 후손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남존여비가 사회 저변에 그 힘으로 작용하던 시기에 남녀노소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 안에 남아있던 분열의 요소를 하나로 묶어낸 용광로와 같은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종교도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3.1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신앙의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자세를 되새겨야 합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의 시각을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답답한 현실뿐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회복의 길이 보입니다. 우리는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화해와 하나 됨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념을 붙잡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낙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회복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갑시다.
지금으로부터 106년 전, 우리나라가 일본의 통치를 받고 있던 시절입니다, 독립을 간절히 갈망하던 우리 선조들은 일본의 총칼 앞에서도 ‘대한 독립’을 외치며 거대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3.1운동입니다. 우리는 오늘 빼앗긴 조국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우리 선조들의 피가 맺힌 3.1절을 생각하며 기념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나라의 주권과 언어와 영토를 빼앗긴 그 아픔을 지난 36년간 정말 뼈가 저리도록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박은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3.1 운동 당시 200여만 명이 참가하여 7,509명이 사망, 15,850명이 부상, 45,306명이 체포되었으며, 헐리고 불탄 민가가 715호, 교회가 47개소, 학교가 2개소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삼일 독립운동이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 사랑한 애국애족 운동의 정신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당시 1600만명의 국민 가운데 1.3%가 한 20만명 정도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수가 당시 민족을 일깨우고,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영적 리더였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이 운동의 준비과정과 조직, 그리고 온 민족이 참여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독립선언서 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 인사였습니다. 당시 조선 총독부가 남긴 비밀 문건 속에는 "이 민족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조선의 교회다"라는 기록을 남길 정도로 기독교인들은 그 시대를 이끌어 갔습니다.
당시 한국 교회는 민족에게 희망을 던져 주었습니다. 국민의식을 바꾸었습니다. 미신을 타파하고, 신분제도를 철폐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하고 모든 백성은 평등하다는 사실을 전파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민족의 고난을 대신 지고 국민을 계몽시키는 교육을 일선에서 감당하였습니다. 100년 이상 된 근대화된 학교시설은 대부분 기독교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등 유명 사학들이 신앙인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신식병원은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동산병원, 예수병원 등 병원을 세워 백성을 살렸습니다.
3.1 운동은 이 민족과 심지어 당시 우리 주변의 나라에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3.1운동이 있은지 10주년이 되던 1929년 아시아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타고르는 이렇게 한국을 노래했습니다. "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등불의 하나였던 조선인,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빛이 되리라. 무한히 퍼져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전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조선이여 이제 깨어나소서." 이 3.1운동이 전세계에 자유에 대한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민족을 이끌던 우리 한국교회는 키가 고장난 배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세계 기독교 역사상 부흥의 기적을 이루었던 한국교회는 지금 선교 140주년을 맞이하여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실을 다시한번 직시하면서 어떻게 하면 한국 기독교가 이 민족을 살리는 역할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스더가 살던 시대는 유대 민족에게 매우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친 후에도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거기다 하만이라는 사람이 유대 민족을 말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하만의 술수에 속아 바사왕 아하수에로 왕이 나라 방방� �곡에 조서를 내렸습니다. 에3:13절에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이 당시 70년 포로때 1차 2차 귀한때 고국으로 간 사람을 제외한 유대인들이 10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제 꼼짝없이 전멸당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맞게 된 것입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모르드개는
Ⅰ. 이때를 위함인지 누가 알겠느냐? (14)
14절에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이 말씀이 그의 심령에 꽂혔습니다. 내가 왜 왕후가 됐을까? 왕후가 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왕후가 됐던 과정을 다시 생각하게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자기를 왕후가 되게 하신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야기합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만물을 그 정해진 목적으로 통치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말합니다. 마 10:29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포로의 후손으로 왕후가 될 수 없는 가운데 왕후가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우리를 지금 있는 자리에 세워두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 기 위해 일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왜 나를 이 자리에 두셨는지, 왜 내게 이것을 전공하게 하셨는지, 왜 내게 이런 은사를 주셨는지...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 자리에서 또는 이때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동성교회에 지체로 삼으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에스더가 포로의 후손으로 왕후가 될 수없는 가운데 왕후가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왜 아하수에로 왕이 주연을 베풀다가 왕후를 불러내려했고, 왕후가 그 말을 듣지 않아서 폐위되었을까요? 왜 에스더가 왕후간택에 참여했을 때 헤개라는 책임자가 에스더를 좋게 보고 특별한 배려를 했을까요? 왜 왕이 에스더를 간택에 나온 모든 여자들 중에 가장 사랑하게 됐을까요? 왜 모르드개가 간택과정 중에 왕 암살음모를 알게 됐고, 이것을 왕후 에스더가 왕에게 알려 왕을 살리게 됐을까요?
모르드개는 이 모든 과정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에스더를 왕후로 세우신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 무엇일지를 생각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왕후인 에스더를 통해서 오늘의 이 유대민족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는 이 말씀 앞에 지금의 탄핵 정국 앞에 내가 해야 할일은 무엇입니까? 탄핵 정국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믿음과 분별력, 그리고 기도의 자세입니다. 혼란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감정적 반응이나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시대적 흐름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이 민족의 아픔과 상처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고난 속에서 살아온 민족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 나찌에 의해서 600만명이 학살된 것을 기념하여 예루살렘에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야드바심’이라고 붙였습니다. ‘야드바심’이란 말은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그 기념관 입구에는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백악관 건너편에도 유대인 학살기념관을 세웠습니다. 그곳에 갈 때마다 후손들이 그 아픔과 고통의 순간들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어려움을 잊고 살면 망한다는 것을 뼈져리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고 살고 있진 않습니까? 일본 사람들이 우리 한국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사건이 터지면 쉽게 흥분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곧 잊어버리는 근성을 가진 민족이라� �� 것입니다. 잊어버리면 아픔의 역사는 반복됩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압제를 받은 그 고통에서 이 땅에 해방을 위해 비폭력으로 삼천리 방방 곡곡에 태극기를 들고 외치며 수많은 우리의 선열들이 죽음으로 항거한 이 3.1절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날 이후 35년 동안 36만3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전쟁에 끌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20여만 명의 이 땅의 젊은 딸들이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독립을 꿈꾸던 수많은 애국자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받아야 했고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던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일본은 이 땅에서 수많은 문화재들을 약탈해 갔고, 우리나라의 문화를 말살하고 역사를 왜곡시켰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날을 잊을 수 있습니까? 지금 에스더는 자신이 왜 왕후가 되었는가를 깨닫고 난 뒤 달라졌습니다.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왕을 만나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왕 앞에 나가는 길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입니다.
Ⅱ. 죽으면 죽으리라 16절
이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에스더는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16절입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그것도 삼일동안 금식기도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왕궁에서 시녀들과 함께 삼일 동안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왕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죽음을 겁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결국 그는 금식과 기도 가운데 주님을 의지하고 임금님께 나아갔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하고 임금 앞에선 에스더의 절규가 무엇이었습니까?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왕후 에스더가 요구하는 소청은 부귀나 영화나 관능이 아니었습니다. 진멸 위기에 처한 자기민족을 구원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106년 전에 일어났던 삼일운동도 이 마음이었습니다. 남강 이승훈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그리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도중에 총독부 판사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피고는 항상 일한 합병에 불평을 품고 조선독립을 희망하였는가?” 남강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바가 있으니 어느 누가 조국의 흥왕과 종족의 번영을 바라지 아니하며 더욱이 남의 나라에 합병된 자기 나라의 독립을 바라지 아니하겠는가?”
우리 나라 안중근 의사가 할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가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장한 아들 중근이 보아라. 이제 너는 조국을 위해 죽을 것이다. 사형을 언도 받으면 항소하지 마라. < /span>네가 벌한 이들에게 용서를 구할 필요도 없고 법에 호소하여 더 길게 살 필요도 없다. 혹시 어미보다 먼저 죽는다고 불효라고 생각하지도 말라. 작은 의에 연연치 말고 큰 뜻으로 조국을 위해 죽어라. 그것이 어미의 소원이다”. 조국을 위해 죽은 안중근의 배후에는 이런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만일 안중근이 죽는데 어머니가 울며 불며 항소하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결국 안중근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항소하지 않고 놀라울 정도로 의연하게 감옥생활을 하다 순국했습니다.
Ⅲ. 우리가 가져야 할 3.1 정신
오늘날 대한민국도 정의와 공정성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사회는 분열되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대립하며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져야 할 3.1 정신은 진리 위에 서는 것입니다. 진리 없이 편 가르기와 감정적 대응이 난무하면 결국 사회가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정직과 정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정의를 외치는 것만이 아니라,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 성경적 가치로 점검해야 합니다.
당시 만세운동은 우리 민족역사 가운데 다시 찾아보기 힘든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연합입니다. 만세운동에 온겨레가 다 힘을 합해서 참여했던 것입니다. 우선 상해에 망명하고 있던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일본유학생들도 뜻을 같이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2.8독립선언 사건을 터뜨렸습니다. 이것이 삼일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도 서북지역에서 시작하여 서울, 호남, 영남, 강원 등 전국적으로 퍼져갔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던 지역감정 문제를 뛰어넘어 하나를 이루는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국내의 모든 정파와 세력들이 하나가 되어 참여했습니다. 후에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 정쟁을 일삼게 되었던 사람들도 이때만큼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양반후손과 천민 후손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남존여비가 사회 저변에 그 힘으로 작용하던 시기에 남녀노소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 안에 남아있던 분열의 요소를 하나로 묶어낸 용광로와 같은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종교도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3.1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신앙의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자세를 되새겨야 합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의 시각을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답답한 현실뿐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회복의 길이 보입니다. 우리는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화해와 하나 됨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념을 붙잡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낙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회복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갑시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