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을 향하여(10)-여호와 닛시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24-04-21 |
조회: 163
약속의 땅을 향하여⑩ – 여호와 닛시(영적 전쟁) 출17:8-16
요즘 자고 깨면 전쟁의 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들립니다. 이번에 이란이 마음먹고 이스라엘에 엄청난 화력을 쏟아부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도 단 하루 동안 방어하기 위해 1조 4000억이라는 1년 국방비 예산의 8%를 썼다는 것입니다. 엄청나지 않습니까? 이 이스라엘과 이란간의 전쟁의 여파로 중동지역에 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 전쟁이 없던 시절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의 결과, 인류의 역사가 계속해서 변화를 겪어왔기 때문입니다. 현재도 전쟁은 여러 곳에서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 눈에 보이는 전쟁 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도 있어왔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더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경제전쟁을 들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 없이 경제적 수단을 통해서 상대방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경제적 공방을 말합니다. 여기에 경제 제재, 무역제한 그리고 환율이나 금융통제와 같은 수단들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전쟁인 것입니다.
또 정보전쟁도 들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에 정보와 데이터가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국은 정보를 통제하고 조작하여 이익을 취하거나 상대방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해 왔습니다. 특히 사이버전쟁은 점점 더 거세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해킹을 하고 정보를 빼내고 시스템을 파괴시키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또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전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 전쟁입니다.
Ⅰ. 아말렉과의 전쟁의 의미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이라는 곳에서 출애굽 이후 첫 번째 전쟁을 아말렉과 치르게 됐습니다. 8절에 "때에 아멜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 아말렉이 누군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광야로 나온 백성들이 군대를 제대로 갖추고 있었을 리가 없었습니다. 전투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기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신25:17-18절은 아말렉족속이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공격했는지 보다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아말렉 군대가 오랜 행진으로 지친 이스라엘의 등 뒤에서 공격했고 그것도 특별히 기진맥진한 사람들이 대오에서 뒤로 떨어질 때마다 후방에서 기습을 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말렉족속이 이미 싸움을 많이 해보았고 전술에 능한 전사들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이 사실만 가지고도 우리는 그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힘든 싸움을 해야 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아말렉은 신25:17-18절에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대를 지배하고 있던 애굽이란 세력을 물리치고 대열을 지어 출애굽 했을 때에 주변 강대� �들조차도 이스라엘을 두려워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야. 저들이 믿는 하나님은 대단히 위대하신 분이야.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습니다. 넘실대는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진격해 들어갔을 대에 추격해 오는 애굽의 병거들이 물에 수장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없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존중할 줄 모르는 족속이 아말렉이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습니까? 본문에 모세는 이 문제 앞에
Ⅱ. 기도의 손을 들었습니다. 11절
11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멜렉이 이기더니” 도대체 손을 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요즘 전쟁을 보면 아시지만, 전술과 전략, 그리고 막강한 군시비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중국의 고대 병서인 [손자병법]을 보면, 제3편 ‘모공’편에 적군에게 이기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피지기 백전불태’입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둘은 ‘부지피이지기 일승일패’입니다. 이 말은 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입니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위태롭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대입을 시킨다면 준비안된 이스라엘 백성은 오합지졸입니다. 툭하면 불평을 하는 이들에게 이 전쟁은 1%의 승리 가능성이 없는 광야의 전쟁입니다.
이런 절대 절망의 상황 가운데 참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멜렉이 이기더니” 이는 상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벧전 5:8을 보면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우리의 대적인 마귀가 우리를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마귀가 우리의 대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공격할 틈을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가 여기 손을 든다는 말씀은 기도를 말합니다. 시편 28:2절에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라고 다윗은 위기 앞에 손을 들고 부르짖습니다. 11절에 “모세가 선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들면 이 전쟁에 나간 여호수아 군대가 이깁니다. 그런데 모세의 팔이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이 상황을 이스라엘이 처음에는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팔이 힘이빠지니까 그만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산 아래 전쟁터에서 아군이 패배를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모세는 아론과 훌이 자신의 손을 들게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 쪽에서 한 사람은 저 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그래서 우리는 때로 모여서 함께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손을 들고 있는 모세가 피곤할 수밖에 없지요. 그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모세의 형이었고 한 사람은 모세의 매형이었지요. 세 사람 다 노인이었습니다. 무슨 힘이 남아 있어서 누가 누구의 팔을 붙들어 줄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그러나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팔을 붙들어 줄 때에 놀라운 영적인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생 살아가다가 나 혼자 서 있기도 힘든데 내가 누구의 팔을 붙들어 준단 얘기인가? 나 혼자 일어서 있기도 힘에 지치겠는데 내가 또 누구의 팔을 붙들어 준단 말입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목사의 팔을 붙들어 주면, 내 남편의 팔을 붙들기 시작하면, 내 아내의 팔을 붙들어 주면, 내 목장원들의 팔을 붙들기 시작하면, 힘에 지쳐 쓰러져 있는 목장윈들의 서로의 팔을 붙들기 시작하면 거기에 성령께서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십니다.
저도 지난 코로나 기간에 병원에 입원했을때 지금껏 없던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내 일정으로 열심히 뛰면 모든 것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약해지고 보니 - 우리 장로님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우리 부교역자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없구나. 겸손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한 사람, 한 사람들이 내 손을 붙들어 주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부족한 종의 팔을 붙들어 주시길 부탁합니다. 여러분의 자식이 힘없이 풀썩 쓰러질 때에, 어느날 갑자기 응급실로 여러분의 아이를 안고 달려갈 때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아이의 손을 붙들고 중보기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잘되리라 생각했던 사업이 위태로워져 갈 때에, 우리 주변에 소중한 사람이 비틀거리고 방황할 때에, 우리 가족이 남편이 삶의 좌표를 잃어버리고 흔들거리고 있을 때에 나의 잔소리나 나의 구박은 아무런 능력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엎드려 기도하는 것만이 능력이 되는 것이고 사랑하는 가족이 병들어 신음하는 자식이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힐 때만이 그들이 새힘을 얻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얼마나 여러번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까? 서로를 위해서 붙들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영국의 영적인 거성 스펄전 목사님의 목회를 배우기 위하여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여 그토록 아름다운 목회를 그토록 승리에 넘치는 목회를 할 수 있습니까?" 그때마다 스펄전 목사님은 탐방을 온 분들을 이끌고 기도실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많은사람들이 기도실에 모여서 중보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들의 중보기도가 우리교회의 부흥의 원동력이라고 스펄젼은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의 최대의 위기는 바로 기도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엡6:18절의 말씀처럼 준비해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은 얼만큼 기도하고 있나요?
이번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사건은 큰 의문을 남겼습니다. 어떻게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하마스의 침공 징후를 전혀 알지 못했을까 하는 것과 어떻게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아이언돔이 하마스의 침공을 막아내지 못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오판했기 때문입니다. 하마스는 자기들을 침공할 능력도 없고, 저들이 어떤 공격을 해와도 자기들이 다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신력이 해이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깨달은 이스라엘은 이란이 3만발 드론과 태륙간 탄도를 쏟아 부었는데 99%을 아이언 돔이 격추를 시켰습니다. 이는 무엇을 이야기해 줍니까?
아무리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도 정신력이 해이해지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영적 무장을 잘해도 늘 기도하며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합니 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영적으로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사탄의 공격징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무장의 허점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언제 공격해 와도 맞서 싸울 최상의 준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은 기도하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영적으로 깨어있기 때문입니다. 웬만해서는 허점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격을 해도 쉽게 알아차리고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힘써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능력있는 기도를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기도가 잘 안됩니다. 우리는 무릎을 꿇어야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피곤한 시간에 집에서 기도하면 좋잖아요. 그것은 기도가 안됩니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교회에 나와야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불을 박차는 그 시간 눈꼽을 떼는 그 시간, 졸린 눈으로 신발을 찾는 그 시간, 이미 놀라운 기도를 당신은 하고 있는 것입니다.
Ⅲ. 여호와 닛시 15-16절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본문을 보면 이 산위의 전쟁의 승리를 모세는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시라”는 말입니다. 고대의 전쟁은 깃발을 들고 나가서 싸웁니다. 그 깃발에 자기들이 섬기는 신을 상징적으로 그려놓습니다. 그래서 고대의 전쟁은 신과 신의 전쟁입니다. 모세는 여호와가 자기의 깃발 곧 군기라고 말했습니다. 자기와 자기 군대는 여호와를 대장 삼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군대라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자기들과 함께하는 군대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문제에 직면할 때 단순히 기도함이 중요할 뿐 아니라 기도를 통해 진실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요. 소망이시고 우리의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시기 때문입니다. 시121:1-2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인생의 싸움에서 진정한 승리를 열망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인생의 골짜기에서 기도의 눈을 열어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주목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16절에서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동일한 싸움이 재연될 경우 이 날의 싸움을 교훈삼아 다시 싸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과거를 쉽게 망각하는 존재입니다. 한때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 문제를 해결한 우리가 다른 상황에서 동일한 문제를 만날 때에는 전혀 기도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해결을 구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싸움은 기도의 승리요,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임을 기억하도록 한 것입니다. 지나간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은 오늘의 역사에서나 내일의 역사에서 승산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동성교회를 건강하고 든든하게 세우는 비결은 바로 아론과 훌처럼 모세와 함께 중보하는 기도자들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서로 협력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손이 주님을 향해 들려질 때 승리의 깃발이 올라갑니다. 기도의 손이 내려갈 때는 시험과 유혹이 찾아옵니다.
새봄의 기운이 약동하는 4월의 셋째 주일입니다. 새로운 기대와 소망을 품고 힘차게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긴 겨울의 잠에서 벗어나 기도의 손을 높이 들고 다시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더 이상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마십시오. 믿음이 약해져서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푯대로 삼고, 날마다 전진하십시오. 그리고 두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호와 닛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고 주님을 찬양하는 승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승리가 되십니다. 여호와 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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