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2:1-4. 2022. 3/13 ⑤
오늘 우리가 함께 보는 빌립보서 2장 1-4절까지의 본문은 각각 독립된 네 개의 문장 같지만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한 문장입니다. 이 전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4절 마지막에 나오는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기쁨을 맛보기 원했습니다. 본문은 이 기쁨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지침입니다.
1. 마음이 하나가 될 때입니다. 1-2절
1-2절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여기 계속해서 ‘마음을 같이하라. 한마음을 품으라’는 이 멧세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교회는 일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4:3절에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한 말씀을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대하는 이 빌립보교회는 많은 장점이 있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통증을 앓을 정도로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이 하나 됨의 문제였습니다.
빌립보교회 내에도 투기와 분쟁이 있었습니다. 빌4:2절에서 사도 바울이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인에게 "주안에서 서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한 것을 보면, 교회 내에서 여자들끼리의 갈등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심각했습니다. 3절에서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라고 말한 것을 보면, 빌립보 교인 내에서의 자만심과 허영심이 꽤나 문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빌립보교회의 모습을 볼 때, 예나 지금이나, 초대 교회나 현대 교회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문제는 동일하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 말을 들으시는 분들 가운데 "교회 생활이 이렇게 힘이 드나?"하고 더 염려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너무 비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문제는 있습니다. 학교에도, 직장에도, 가정에도 어디든지 문제는 있습니다. 진정한 하나 됨은 제도나 정치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서 우리가 어떻게 기쁨이 충만할 수 있을까요?
2. 무엇보다도 겸손해야 합니다.
3절을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마음을 같이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 바울을 ‘오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겸손하지 아니하면 절대로 마음을 같이 할 수도 하나 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 고민을 해야 합니다. 본문은 겸손하지 못한 모습과 겸손한 모습을 각각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겸손하지 못한 두 가지 모습, 그게 뭘까요? 다툼과 허영입니다. 난 싸운 적은 없는 데라고 말하실 분이 계실지 몰라요. 그런데 여기서
1) 다툼은 ‘에리데이아’라는 단어인데 ‘자기중심성이 만들어 내는 분리주의’라는 뜻입니다. 자기와 관계되는 것만 중요하게 여긴다는 거예요. 자기 가족, 자기 자식, 자기 목장, 자기 팀, 자기밖에 몰라요. 자기 자식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자식은 관심이 없어요. 그게 여기서 말하는 다툼이에요. 왜요? 그런 사람은 언제든 자기 영역에 문제가 생기면 다투거든요. 그것도 매우 심하게 말입니다. 그리고 ⅱ) 허영은 뭘까요? 허영은 자기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늘 자기 자신만이 옳고 바르다고 생각하기에 사람들에서 늘 자신이 인정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견해만이 늘 탁월하다고 믿지요. 그러나 이것을 잊지마세요. 다툼과 허영에 빠진 사람은 늘 공동체에서 분리되면서도 놀랍게도 자신은 문제가 없고 심지어 겸손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겸손은 그게 아니에요. 겸손은 어떤 모습일까요?
3. 자기 일을 돌아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라. 4절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와 세상의 차이가 있다면 자기 중심성을 뛰어넘어 다른 연약한 지체들을 돌보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을 향한 교회의 차별화된 경쟁력이요, 교회의 핵심 역량입니다. 본문에서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돌아보다'는 말은 '목표를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활을 쏠 때나 총을 쏠 때, 목표를 집중하기 위해 한쪽 눈을 감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신을 향해서는 완전히 눈을 감아 버리고,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서만 집중하면 인간관계에 하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인간관계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기준에 따라서 생각하고 자기 기준에 따라서 판단하고 자기 기준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조직 이상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섬겨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봉사의 초점은 일 자체가 아닌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잘못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 중심적인 사람들이 특히 유의할 것이 이것입니다. --일을 성취하더라도 그 일의 과정에서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을 상처받게 하고 좌절시켰다면 우리는 잘못 섬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섬길 것은 일이 아닌 사람을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성장하는 삶속에 더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으로 세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늘 현대인들은 모두가 다 외롭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모두가 소외를 느낍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지쳐있습니다. 우리 동성교회는 이런 현대인들에게 평안한 쉼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서로가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하나 됨의 기적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부서지고 죽어져야 합니다. 그게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고 내 삶 전체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용광로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용광로이십니다. 여기다 나를 집어 던져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죄로 가득 찬 옛사람이 완전히 녹아지고 부서지고 죽어져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우리는 지금 공사 중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인격도 온전한 모습으로 세워지기 위해서 공사 중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때로 공사 중에 실수하고 실패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주님 주신 힘으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때론 죄의 유혹에 넘어지고, 세상의 무거운 짐에 눌려 쓰러질지라도, 좌절하지 말고 주님의 손을 붙잡고 다시금 용기를 내어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완성품이 아닙니다.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아직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제작 되가고 있는 중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도록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주님을 신뢰함으로 나아 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