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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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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1 문이 활짝 열리는 교회 (계3:7-13)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7-01-01 | 조회: 1708


 

할렐루야! 2017년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금년이야말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께는 영광만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풍성한 신앙의 승리가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 해 동안 기쁨과 감사가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정에는 복음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어서 구원받은 가정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가정 천국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금년도 우리교회 표어가 "문이 활짝 열리는 해"입니다. 교회는 모든 세대, 모든 계층, 모든 부류의 사람을 향하여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동성교회는 언제나 모든 사람들을 향해 문이 활짝 열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꿈과 비전입니다.

 

칼 포퍼라는 사람이 쓴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란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우리의 어떤 주장이 과학적인 타당성을 지니려면 내 주장이 틀릴수도 있다는 소위 사고의 개방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내 생각이 틀릴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기 때문입니다.)이런 개방성이 과학을 발전시키고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의 사회가 어느 정도 열린사회가 되게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 우리 한국인에게는 열려 있다는 말이 가장 낯익게 다가온 것이 아마도 열린 음악회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후 교회 예배에서도 열린 예배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적지 않은 교회명중에서도 열린 교회’ ‘열린 문 교회라는 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상호 중에도 열린 식당',‘열린 공간등의 명칭 등이 등장했고 열린 학교‘ ’열린 교육이 주창되고 심지어 한 때 정당명에도 열린 우리당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열린사회는 새로운 사회의 통념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데올로기를 뜻하는 말에도 열린 진보’ ‘열린 보수라는 단어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열려 있다'는 말은 개방성을 뜻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경우는 긍정적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세 역사에는 대원군당시 그의 힘찬 기백과 신념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문을 닫는 '쇄국 정책' 선택함으로 돌이킬 수 없는 국익의 손실을 초래하게 된 과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1세기의 소아시아에 존재하던 한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던 사도 요한이 이 교회에게 주께서 그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열린 문은 바로 생명의 문입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이 열어 놓으신 이 문을 들어설 때, 세상이 주지 못하는 하늘의 그 신령한 복괴 이 땅 위에 기름진 복을 마음껏 누릴 수가 있습니다. , 그러면 오늘 이런 1세기의 교회를 통하여 21세기의 우리 교회가 어떻게 열린 교회가 되어 이 시대에 우리 교회에 맡기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교회가 바로 빌라델피아 교회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한번 태어나 행복도 맛보고, 고생도 맛보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개인의 행복과 인생의 의미가 어떤 교회를 다니느냐에 의해 상당부분 좌우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정말 은혜를 받았느냐, 교회를 통해서 정말 삶의 의미를 발견했느냐, 교회를 통해서 정말 뒤돌아보아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왕에 다닐 바에야 하나님이 칭찬하는 그런 교회에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계시록에 보면 7교회가 나옵니다. 어떤 교회는 주님이 엄청나게 책망을 하십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교회는 칭찬과 책망도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누가 살았다는 이름은 있지만 죽은 송장과 같은 주님이 호되게 책망하는 사데교회를 다니고 싶어하겠습니까? 누가 여러분 스스로 자만에 빠져서 아주 식어버린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그런 교회에 몸담고 싶어하겠어요? 평생 고생하면서, 그런 교회 누가 다니겠습니까? 이왕 다닐려면 빌라델비아나 서머나 교회처럼 주님이 칭찬하는 교회를 다니고 싶고 그런 교회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최선을 다해서 한번 헌신해보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요 심정이어야 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이 빌라델피아 교회를 살펴 보겠습니다.

 

1. 빌라델피아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 7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빌라델피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여기서 그리스도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타트(John Sttot)는 여기 다윗의 열쇠는 메시아되신 그리스도의 권세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메시아되신 주님이 이 권세의 열쇠를 가지고 교회 앞에 문을 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문을 열수도 닫을 수도 있는 권위를 갖고 계시는데 그분이 문을 열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그가 활짝 기회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열린 문을 통과 한 사람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의 문 역시 열려져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고 살면 그것보다 불행한 것이 없습니다. 이웃끼리 교류가 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마음을 닫고 살면 하나님과도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을 굳게 닫아놓고 자기만의 성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를 도우려고도 하지 않고 누구가의 도움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간섭하는 것도 싫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와 간섭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여러분!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의 문이 닫혀버리면 하나님을 향해서도 마음을 열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서로를 향하여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축복을 받아서, 서로를 자신의 사랑의 품에 품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봅니다. 같은 집에 사는 가족들이 서로 마음을 닫고서 남남처럼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교회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오면 서로가 마음을 활짝 열고 사랑하고 교제하면서 가족 이상으로 마음이 통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행복한 신앙공동체가 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어서 와도 또 오고 싶은 교회, 헤어지면 언제 만날까 기대가 되는 성도들, 주일이 되어 교회에 가려고 하면 마음이 설레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도들이 마음을 열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면 세 가지 축복을 받습니다.

신앙 생활하는 것이 너무너무 재미있습니다. 여러분, 기왕에 신앙생활하려면 재미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은혜는 받는 줄 아십니까? 신앙생활을 기쁘고 감사함으로 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습니다. 세상 죄를 다 뒤집어 쓴 것처럼 오만상을 다 하고 예배드리면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그런 사람에게 은혜가 임하겠습니까? 서로 마음을 열어 기쁘게 신앙생활하시고, 은혜풍성한 생애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이 서로 마음을 열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면 전도가 자연스럽게 됩니다.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해도 기를 쓰고 교회에 나옵니다. 교회에 가면 재미있고, 교회에 가면 사랑이 넘치는데 왜 안 오겠습니까? 교인들 간에 사랑이 식어지고 티격태격하고 분쟁이 있으면 전도의 문이 막혀버리고 맙니다. 어떤 교회가 부흥하고 전도가 잘되는지 아십니까? 사랑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아무리 말로 교회 나와라. 예수 믿어라.’ 그래도 교인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티격태격 하면 교회에 나오려고 하던 사람들도 니네들이나 잘해라그러면서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넘치면, 교인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저 교회에 가면 뭐가 저렇게 재미있을까?’ 궁금해서라도 교회에 나옵니다.

성도들 서로가 마음을 열고 사랑하면 기도가 잘 되고, 기도에 응답이 있습니다. 서로가 마음의 문을 닫고 사랑을 하지 못하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부부싸움 하고 난 후라든지, 이웃과 어떤 일로 싸우고 나서 기도하려고 하면 기도가 잘 됩디까? 절대로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기도에 응답도 없습니다. 기도를 잘 하려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마음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도 잘 할 수 있고, 기도에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빌라델피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 1세기의 빌라델피아 교회는 이런 열린 기회 앞에 효율적으로 응답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다시 8절의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켰으며, 작은 능력 밖에 없음에도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작은 능력내 말을 지키며가 대조되고 있습니다. ‘작은 능력배반이 대조됩니다. , 작은 능력을 가질 경우 일반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작은 능력 밖에 없으면 주님을 배반하기 쉽다는 뜻입니다. 이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불평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면서 신앙을 저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적은 능력이라는 말은 "능력이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이 사회적인 신분으로도 보잘 것 없는 미약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 서도 나를 간절히 사랑하고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하여 감격하시는 것은 "네가 작은 능력을 가졌음을 내가 잘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말을 지켰고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빌라델비아 사람들은 사회적인 신분으로도 너무나도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하나님께 위로 받기 위하여 더 간절히 하나님을 섬겼는지 모릅니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요, 진리요, 축복이기에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 아니겠습니까? 즉 자신이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하여 말씀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으로 인하여도 감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내� � 있는 믿음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섬김과 헌신.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내가 가진 가장 순결한 모습으로, 내가 가진 가장 정직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진실히 섬길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키며 삶으로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던 빌라델비아 교회 교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3가지를 약속해 주십니다.

 

첫째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시겠다 약속해 주십니다. 10절입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여기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시겠다 말씀은 앞으로 시험이나 시련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 주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선택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려 할 때 우리는 수없이 많은 시험을 겪어야 하고, 시련을 감내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잘 하면 시험이나 유혹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지키며 살려 할수록 더욱 큰 시험과 유혹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어떤 환난이나 힘든 일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또 � 錚� 시험과 유혹이 온다 하더라도, 곤고한 일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믿음의 길을 따라 간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지켜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언제나 우리의 손을 붙잡고 우리로 하여금 시험의 다리를 건너게 하시고, 유혹의 강을 건너게 해 주십니다.

 

둘째는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여기 이들에게는 이미 놀라운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면류관을 따놓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고 합니다. 그래야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주님을 만나 뵙는 그 순간까지는 안일하여지지 말고 지금까지 지켜온 믿음을 더욱 지속적으로 붙들어야 함을 분명하게 하신 것입니다. '면류관'은 경기장에서 승리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따라서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은 경기장에서 선수가 상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달리라는 말씀입니다.

 

세째로 주님께서는 당신이 인정하는 사람을 기둥 같은 인물로 써주십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전의 기둥은 가장 튼튼합니다. 지금도 성지 순례나 고대 유적들을 돌아보면 벽체나 건물 형태들은 다 사라지고 기둥만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문화 유산 1호라는 파르테논 신전이란 곳도 가면 기둥만 남아 있습니다. 기둥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둥 같은 존재로 삶을 사람들이 바로 이처럼 작은 능력을 가지고고 믿음을 변치 않고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맡은 자리에게 기둥이 되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기둥 같은 존재가 되시길 바랍니다. 교회에도 기둥 같은 존재가 필요합니다. 초대교회에도 기둥 같은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을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2:9)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기둥 같은 존재가 될 자 누구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지키며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를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둥과 같은 인물로 써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이름을 결코 잊지 않고 영원토록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국가에 충성한 사람의 이름을 그들이 섬기는 신전의 기둥에 새겨 그 사람을 존귀케 하였는데, 주님께서는 변치 않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존귀하게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영광을 누릴 하나님의 백 성임을 증명하는 증표를 남기겠다는 것입니다. ()쳐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보장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어 여러분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처럼 꼭 필요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기둥 같은 인물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그들은 서머나 교회와 함께 유일하게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만 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말씀을 지키고 믿음으로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말씀대로 순종하면 인내 가운데 살아갈 때, 비록 적은 능력이 있지만,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기둥처럼, 그리고 면류관의 주인공으로 더 나아가 시험이 오나 그것으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당당하게 나아가는 승리의 삶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는 열린 문인 생명의 문에서 흐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강을 마시므로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좋은 교회일수록 은혜가 넘치기 때문에 그 은혜를 통해서 자신이 절대적으로 행복해집니다. 심령이 은혜로 윤택해지면 신경질이 사라집니다. 인간관계가 부드러워집니다. 부부 사이가 원만해집니다. 그러나 은혜가 메마르면 자기도 모르게 자꾸 짜증을 부립니다. 신경질을 냅니다. 남편이 이것저것 다 사주는데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철저하게 이기주의자가 되어 인간관계가 사나워집니다. 피차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세상적으로 누리는 것이 많다 해도 절대 행복하지 못합니다.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동성 교회 여러분,

이제 새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좋은 교회를 이루자는 꿈을 가지고 높고 크신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립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먼저 좋은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 해 동안 우리가 열리기를 소망하며 나아갈 5가지의 문이 있습니다. 첫째, 예배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둘째, 말씀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셋째, 기도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넷째, 다음세대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다섯째, 축복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며, 거룩한 주의 뜻을 품고 달려갈 때 다섯 가지 문이 활짝 열리는 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그리할 때 복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소망을 안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만유 중에 높이 계신 주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 영원토록 다스리시며 영광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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