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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4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하여 (딤후 4:9-18)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6-12-04 | 조회: 1326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하여 딤후 4:9-18. 2016. 12/4.

 

금년도 어느덧 겨울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앞에 주어진 일들을 쫓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날은 추워지고 아름답게 물들었던 단풍잎도 한 잎 두 잎 떨어져 바람과 함께 거리를 뒹굽니다. 겨울이 오면 나무도 그 활동을 중단하고 앙상한 가지만 드러냅니다. 모든 화려했던 옷을 벗고 앙상함을 드러내는 계절, 지나간 모든 자욱들이 여지없이 나타납니다. 이렇듯 춥고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청년에게도 나이 많은 어른에게도, 부자에게도 가난한 자에게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도, 건강한 사람에게도 아픈 사람에게도, 준비한 사람에게도 준비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이런 겨울이 자연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도 있습니다. 인생의 겨울도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인생의 겨울, 화려하고 아름답던 치장들은 모두 하나둘씩 벗겨져 그동안 감추어 왔던 지난날 삶의 흔적들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때는 더 이상 노래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씨앗을 뿌릴 수도 없습니다. 새로운 기회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단지 삶에 대한 평가만이 남을 뿐입니다. 자연에서 겨울은 봄여름 가을 다음 순이지만 인생에서 겨울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닥칠지 예고가 없습니다. 바로 그때를 위하여 우리는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모든 활동이 중단되고 더 이상 인생의 기회가 없는 그 마지막 때를 위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일평생 하나님 뜻을 위해 살았던 사도바울이 자신의 마지막 인생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의 모습은 그 어느 때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그는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정황으로 보아서 그는 이제 머지않아 순교하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본문 9절을 통해서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그리고 21절의 겨울 전에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이 말은 일차적으로 자연의 겨울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 편지 전체를 읽어보면 바울이 단순히 자연의 겨울을 뜻하는 의미만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전제, 부어지고, 떠날 시각이라는 이 세 단어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깊은 진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처럼 우리에게도 인생의 마지막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해의 끝자락 앞에 나의 삶을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첫째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스쳐지나간 반면 어떤 사람과는 가까이 지냈습니다. 그들이 던진 말 한마디가 따스한 온기가 되어 아직도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는가 하면 그들이 던져준 말 한마디가 냉기가 되어 아직도 가슴에 서러움으로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필요를 위해 바울을 떠났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사역을 위해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여러 사람의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가 바울의 삶 속을 거쳐 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데마, 마가, 알렉산더의 세 사람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여기에 나오는 그레스게와 디도는 신실한 일군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일 때문에 부득이 바울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처음에 나오는 데마였습니다. 여기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이 그토록 가슴아파했던 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배신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데마가 과거에 나름대로 열심 있는 신앙인이었고, 심지어 바울의 복음 사역에 협력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데마에 관한 기록은 많이 없지만, 바울의 다른 서신 중 두 군데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바울은 동역자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그 중에 데마의 이름을 거명하고 있습니다. 동역자라는 말은 복음을 위해 협력하는 자라는 겁니다. 4:14절에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누가는 바울의 곁에서 주치의 역할을 하면서 복음 사역에 협력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데마를 누가와 동격으로 거명합니다. 그러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데마가 바울 곁에서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바울을 배반하고 훌쩍 떠나버린 겁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했습니까?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도 말합니다. 한 때, 복음을 위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정도로 - 사도 바울과 함께 온갖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했던 사람이 그만 타락해서 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옛 생활로,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1절에 마가가 나옵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여기 바울은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마가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1차 선교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가가 함께 했습니다. 마가는 예루살렘의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별로 고생을 안해 봤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선교여행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환난이 많았을 것입니다. 핍박도 있었습니다. 결국 마가는 중도에서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혼자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와버렸습니다.

 

그 뒤에 바울은 2차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가가 자신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가겠다고 나섰습니다. 러나 바울은 일언지하에 딱 잘라서 거절해 버렸습니다. 것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아름다운 신앙두 사람은 갈라졌습니다.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따로 선교 여행을 가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선교 여행을 갔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인생의 겨울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그가 하나님 앞에 서야할 텐데, 그 때 마가의 아팠던 마음을 생각하면서 그를 불러다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가야, 그 때 힘들었지? 마음이 아팠지? 섭섭했지? 그 때 내가 좀 심했을거야. 미안하다!" 그러면서 마가를 불러 위로하고 난 뒤 바울은 하나님에게 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물론 잘못은 어디까지나 마가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마가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본문 14절은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라고 말씀합니다. 구리 장색이란 옛날에 구리로 우상을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이 우상을 만들어 장사하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로 인하여 장사에 막대한 손해를 보았기 때문에 바울을 심히 괴롭혔습니다. 바울에게는 그의 목회사역을 방해하던 아주 원수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들에 대하여 "주께서 그 행한대로 저희에게 갚으시리니" 하며 하나님께 맡겨 버렸습니다. 내가 더 이상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께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는 "너희도 저희를 주의 하라"조심하라고 얘기할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는 관계의 삶을 정리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때로는 데마와 같이 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는 사람을 만났을 것입니다. 때로는 마가처럼 화목하지 못하고 우리가 사과해야 될 사람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또 알렉산더처럼 우리에게 많은 해를 입힌 사람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떠한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까? 신앙이라는 이름 한 가지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정죄하고, 마음에 못질을 한 경우가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겨울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바울처럼 너그러운 마음과 사랑의 온정을 가지고 모든 관계를 아름답게 정리하기를 바랍니다. 용서해야 될 사람은 용서해 주십시다. 그리고 사과해야 될 사람에게는 사과할 수 있는 신앙의 담력이 우리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도 바울처럼 겨울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사도바울은 아름다운 마지막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두었습니다. 13절 말씀 아들 디모데에게 얘기합니다. 네가 올 때 내가 드로아 가보에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책은 특히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지고 오라70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마지막 인생의 문턱을 습기 차고 칙칙한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사도바울은 현재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겨울을 나기 위해 외투 한 벌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구약성경은 양가죽의 두루마리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피가 크고 무거웠습니다. 늘 가지고 다니기에는 힘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회당에 두고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신의 말씀을 별도로 두었습니다. 선교여행으로 정착할 수 없었던 바울은 어느 집에 맡겨두어야만 했습니다. 인생의 겨울이 와 모든 것은 떠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졌을 때에도 힘과 용기 그리고 소망을 줄 수 있는 마지막 의지,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미국에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미국 테러가 발생하자마자 갑자기 사람들이 성경을 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짧은 기간 내 작년 대비 42%이상의 성경이 판매되었습니다. 도무지 인간의 지혜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 이르자 말씀 앞으로 나올 수 밖에 없던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 그 자체라는 것을 꼭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 자라야 합니다. 이 말씀을 멀리 떼어 놓으면 영혼이 굶어서 결국은 우리의 신앙마저도 뿌리 뽑히고 맙니다. 신앙생활의 성패는 내가 얼마만큼 하나님의 말씀과 끊임없이 지속적인 관계를 잘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긴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잘 유지하는 사람은 살게 됩니다. 그 사람의 신앙은 절대로 낙오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에 어떤 탈이 생기면 신앙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이미 경험하신 분도 있겠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을 텐데, 누구나 예수를 처음 믿고 얼마 지나면 성경과 첫사랑에 빠집니다. 밤낮으로 성경을 들고 있습니다. 안 읽으면 못 견디는 것입니다. 그리고 읽다 보면 삼매경에 빠져버립니다. 다른 책을 보기도 싫어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 내 속에 가득한 성경 이야기만 먼저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성경이 나의 진실한 애인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저도 한 5-6년 동안 그런 상황에 있었는데 참 황홀했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얼마나 기쁨이 충만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첫사랑이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남녀간의 첫사랑도 식어 버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첫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부부가 결혼하면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병들 때나 한평생 동거하면서 꾸준히 살아가는 느긋한 사랑이 있습니다. 갑자기 뜨거운 사랑보다 은근한 사랑,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것이 부부생활의 행복을 결정합니다. 우리와 성경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때 성경을 정신없이 읽고 좋아서 들고 다녔던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근히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그것이 식어지면 안 됩니다.

 

링컨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돌아가실 때 어머니가 주신 작은 성경책 한권을 평생 품에 활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어 취임할 때 그 성경책 위에 손을 얻고 취임을 했다고 합니다. 백화점 왕이라는 와나 메이커는 14살 때 점원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31세 때인 1869년에 가장 큰 백화점을 세워 백화점 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그분이 성공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재산이 모두 200억 달러정도 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은 내가 11세 때 시골에서 살 때 돈이 없어 2달러 75센트를 주고 산 이 성경책입니다, 그때 돈이 없어 할부로 구입한 이 책이 나에게 가장 귀한 재산입니다, 왜냐하면 이 성경책이 오늘 나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하고 고백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알았습니다. 그랬기에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말씀을 가까이 했습니다. 마지막 순간 인생의 겨울에 서서도 말씀과 함께 했습니다. 소망의 나라로 인도하실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죽음 앞에 비굴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자기 삶을 아름답게 살았노라고 고백하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오늘 내 고백이 되기를 원한다면 지금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읽으십시오. 묵상하십시오. 이 말씀의 의미를 해석하십시오. 그리고 그에 따라 삶을 다시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은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 여름, 가을에 준비하는 사람은 인생의 겨울을 춥게 지내지 않습니다. 인생의 아름다운 결산을 위해 말씀으로 준비하는 인생을 사십시오.

 

셋째로 우리는 한 해의 마무리를 할 때마다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우리 인생의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옴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감옥 안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이유는 임마누엘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보세요.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지금 감옥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겐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감격합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셨다인생을 살면서 이처럼 큰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신다. 힘을 주신다.’ 바울은 이 은혜 앞에 있었기에 절망의 상황 안에서도 주저 않지 않습니다. 이 시간 묻습니다. 분 앞에 선,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중에 죄인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는 원수의 자리에 있던 자들입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사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시고, 그 위에서 당신의 몸을 찢어 보혈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말끔히 씻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어찌 그 뿐입니까? 죄사함의 은총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이름을 지으시고 언제든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 주시기까지 하신 그 분이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입은 자가 바로 우리입니다. 한해를 돌아 볼 때, 왜 염려가 없고 왜 답답함이 없겠습니까? 이젠 지쳐서 쓰러지고 싶을 때, 다 내려놓고 싶을 때, 바울은 감옥을 겹겹이 붙어 있는 쇠창살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 창살 너머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그 하나님, 그리고 새 힘을 주시는 그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내가 나의 이 현실과 처한 환경 앞에 왜 이 어려움이 있어야 하는지 잘 알 수 없지만,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그분께서 나의 머리털 하나까지라도 세신바 된 그 뿐께서 나의 작은 신음 마져도 응답하시기를 원하시는 그분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가장 아름다운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여러분, 동행은 같은 길은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마음으로 가는 것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주님의 손을 붙잡고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과 동행할 때 우리의 삶은 진리를 따르는 삶이 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는 불의함이 없습니다. 죄악이 우리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리의 삶에 생명과 평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우리네 인생은 여행길입니다. 그 여행길에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생활에도 겨울이 옵니다. 또 부부가 2030년 함께 살다보면 서로가 서로를 귀한 줄을 모릅니다. 남편은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맛있는 밥을 지어놓고 기다리지요. 아내도 으레 저녁이 되면 남편이 돌아오는 것이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저녁에 돌아와야 할 남편이 없어 쓸쓸한 벽이 당신을 반기는 날이 옵니다. 서로 귀한 줄 알고 서로 아끼고 서로 속 썩이지 말고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랑하십시다. 예배에도 겨울이 옵니다. 이처럼 은혜로운 예배를 그리워 할 날이 옵니다.

 

교회에서도 주일 봉사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목장을 섬기고 심방을 하고 찬양대에서 찬양하던 그 일에도 겨울이 옵니다. 찬양대도 보면 나이 드신 권사님, 장로님들 이 옛날 생각하고 찬양대에 앉아 보는데 자꾸 음이 플렛이 되고 샵이 됩니다. 바이브레이션이 심해집니다. 그땐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시간입니다. 더 늙기 전에 열심히 하세요. 우리 인생은 일방통행입니다. 한번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겨울이 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네게 준 시간, 건강, 재능, 물질을 나를 위해 사용하다가 왔느냐?”라고 질문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주님이 주신 것들을 지금 어디에 투자하고, 무엇을 위해 쓰고 계십니까? 우리 인생에게 있어 겨울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여기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했기에 가능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이 짧은 인생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이 땅에 좋은 것을 남기고 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랑과 덕, 인자함을 남겨야 하며, 좋은 발자취를 남기고 가야합니다. 이제 이 12월 한달을 하루 하루 자신을 점검하고 나의 마지막 시간을 잘 활용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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