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최고의 열매 - 감사 신16:16-17. 2016. 11/19. 추수감사주일
올해도 어김없이 2016년 한해를 돌아보며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드리는 추수감사주일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올해의 감사주일은 감사보다는 화와 분노가 치미는 그래서 가장 슬픈 감사주일인 것 같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대통령과 최순실의 사건으로 인해 정국이 난국이 되었습니다. 그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변명만 일삼다가 양파껍질 벗겨지듯 하나씩 그 놀라움의 실체가 낱낱이 보여지면서 혹시가 역시가 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모두 혼란 상태에 빠져 버렸습니다.
너무 큰 뉴스이다 보니 다른 뉴스가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분노에 치민 나라의 국민들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어 한숨이 나옵니다. 경제를 보아도 마찬가집니다. 어디하나 시원스러운 곳이 없습니다. 요즘 사람들하고 대화를 나누면 온갖 불만 불평 원망이 가득합니다. 메스콤을 틀면 한국국민은 온통 분노와 실망 좌절뿐입니다. 사람 사는 곳이 마치 지옥 같습니다. 그 어디에도 평화, 행복, 감사의 마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 생각에 동의가 안 되어도 감사는 억지로 해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아무리 시국이 요동을 치더라도 변함없이 감사하란 말입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 교회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맞이한 추수감사주일, 그래서 우리의 삶과 시간을 돌아보면서 ‘신앙의 최고의 열매 - 감사’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깨닫는 감사의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인간은 본성 상 감사하기가 참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인간성이 점점 악해져가는 말세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롬1:21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딤후3:1-2절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오늘날 현대인들이 불행한 이유는 무엇이 아직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사네 못 사네 해도, 있네 없네 해도 옛날에 비해 전반적으로 얼마나 풍요로워졌습니까? 의식주 모든 면에서 그런데도 볼행한 이유는 오직 하나 감사하는 마음을 상실한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현대인이 부지불식간에 상실한 최고의 자산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경제 불황을 탈출하는 게 아니라 영적 불황인 감사불감증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오늘 감사절을 맞이하여 혹시라도 우리에게 감사의 마음, 감사의 신앙이 상실되었다면 다시 한번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는 신앙으로 늘 행복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1년 중 중요한 명절 3개를 지정해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이라는 3개의 명절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1년에 3번 추수를 합니다. 겨울 동안 자란 밀을 초봄에 추수할 때가 있습니다. 이 추수기에 맞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입니다. 곧 유월절 명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봄부터 시작해서 뿌린 밀과 보리가 자라서 추수를 하는 늦여름이 되면 칠칠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맥추절로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주신 양식을 놓고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늦은 가을이 되면 그동안 열심히 가꾼 올리브나 포도, 무화과 같은 과일들을 풍성하게 소출하는 연말이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1년에 3번의 추수가 있었는데, 여기에 맞춰 큰 명절 3가지를 제정하셔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명절을 지킬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신 은혜들을 회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매년 몇 개월에 한 번씩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히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정말 불행하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이 3절기를 제대로 지킨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귀찮다는 이유로 절기가 있다라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수백 년을 보낸 암흑기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때를 따라 적절한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철를 밟는 불행한 사람이 되어선 안 됩니다. 감사가 우리에게 체질화되고 습관화 되도록 계속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될 것입니다. 오늘은 초막절을 중심으로 해서 은혜의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첫째로 초막절이라 불리우는 추수감사절을 성경의 역사를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13절에 보면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1주일 동안 초막절만 되면 사람들은 들로, 遠막 가서 올리브 가지나 종려 가지 등을 잘라와서 자기 집 옥상이나 마당,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야외에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텐트, 초막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서 1주일 동안 가족들이 기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초막절을 지키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나서 40년 이상 그런 초막을 짓고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이제 그 광야 생활을 되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어렵고 무서운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도와주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하셨는가를 회상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초막절이었습니다.
시편 107편에 보면, 그들의 광야 생활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시107:4-7) 그들의 광야생활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는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방황하고, 성을 찾지 못해 애를 쓰고, 주리고, 목마르고, 근심 중에 빠져서 하루하루 살던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이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도와 주셨는지, 어떻게 때를 따라 먹여주셨는지, 어떻게 원수로부터 지켜주셨는지, 어떻게 그들의 몸에 질병이 생기지 않도록 은혜를 주셨는지 그것들을 회상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토록 하기 위해 나뭇가지로 초막을 지어놓고 그 속에서 살도록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가운데 광야 같은 세월을 보내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 기간은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다 광야 같은 위기를, 광야 같은 역경을 한두 번씩은 경험하며 지내왔습니다. 요즘 수능을 치루고 당사자 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마음고생이 많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광장히 강하고 또 대단한 것 같지만, 그 속을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참 약한 존재란 것을 알게 됩니다. 주체하지 못하는 슬픔 앞에서 몸부림치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무서운 고독 앞에서 밤을 세우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심각한 질병 앞에서 하얗게 질려버리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 가여울 정도로 나약하다는 사실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내가 감당키 어려운 문제가 나에게 다가와도 나의 인생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광야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곳입니다.
자연을 보세요. 한 여름에 바다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헤일입니다. 헤일이 일면 바다의 파도가 5m 혹은 10m 이상이나 높습니다. 바닷가의 집들을 삼키고 방파제를 부숴 트립니다. 대혼란을 일으키고 많은 피해를 발생시킵니다. 헤일이 정말로 무섭습니다. 그런데 이 헤일이 지나고 나면 바다에 상당히 유익한 일이 생깁니다. 바다 밑을 다 뒤집어 놓기 때문에 바다 밑에 산소가 풍부해 지고 그로 인해서 다시 바다 밑에 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헤일이 없는 바다 밑 깊은 곳은 생물이 살 수 없습니다.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지만 헤일이 일면 바다 밑바닥이라도 언제나 싱싱한 바다가 되어 생물이 거하는 싱싱한 바다가 됩니다. 그러므로 헤일은 일시적으로 고통을 불러와도 모든 생물에게 유익을 주는 고마운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지내오고 보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있는지, 왜 이 아픔과 고통이 나에게 일어나는 지를 깨닫게 됩니다.
두 번째는 이 감사 절기에는 이웃과 함께 지켜야 했습니다. 구약의 감사 절기의 가장 아름다운 특징은 모든 이웃과 더불어 감사 절기의 풍요와 기쁨을 함께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특히 사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과 함께 절기를 함께 지킬 것을 명하셨습니다. 신명기16:14절에,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소유가 없는 객과 나그네, 농사지은 것 없는 과부와 고아, 분깃이 없는 제사장인 레위인 들에게는 물질을 나누어주고, 그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며 절기를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감사 절기는 어떤 특정 부류나 있는 자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하늘 아래 사는 모든 사람들이 기쁨을 맛보는 축제였던 것입니다. 나와 하나님과만 관계하는 기회가 아니라 이웃들과도 함께 기뻐하는 절기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초막절에 내 창고에 추수한 것들을 가득 채워놓았다면 그것은 내 배만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한 사람들, 너무너무 가난해서 살아가는 것이 힘에 겨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욕심은 ‘나를 위해서 더 많이 저장해 놓아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 경고해 주십니다. 어떤 부자가 그 해 농사를 지어 많은 곡식을 거둬들였습니다. 기존에 있던 창고가 비좁을 정도로 거둬들인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더 큰 창고를 짓고 거기에다가 곡식을 가득 채워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됐다. 여러 해 먹을 것을 가득 채워놓았으니, 평안히 쉬면서 마음껏 즐기며 살자.’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영혼을 내가 불러갈 것인데, 여러 해 먹을 것을 그렇게 쌓아놓은 들 그게 무슨 소용이냐?’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비단 그 어리석은 부자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감사할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이웃과 나눠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는 표현해야 합니다. '감사는 은혜 받는 그릇'이라고 우찌무라 간조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감사의 그릇이 클수록 은혜가 크게 임하고 또 우리가 감사하는 그릇이 많을수록 은혜도 많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받기도 하고, 은혜를 베풀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래서 대개 보면 남의 은혜를 많이 받고 사는 사람보다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잘됩니다.
셋째는 감사는 모든 사람이 다 해야 되고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16-17절입니다. “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3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1년에 3차례씩 명절을 지키라고 당부하시면서 재미있는 명령 1가지를 주셨습니다. 곧 명절을 지킬 때마다 남자들은 하나님 앞에 와서 얼굴을 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남자들만 이렇게 보이라고 했을까요? 남자들만 감사하라는 말일까요? 언뜻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가정을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와 얼굴을 보이라고 한 것입니다. 초막을 지어놓고 모든 식구가 그 속에 들어가 1주일 동안 기거하면서 광야 생활을 회상하며 그 가정의 아버지가 가족을 앉혀 놓고 예배하는 그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말씀 앞에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자녀들은 아마 자기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 환경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다시 부모의 그 깊은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16절 하반절에서 17절에 ‘빈손으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찌니라“ 우리 인간에게 약점이 있습니다. 돈은 가지면 가질수록 내 마음이 자꾸 그곳에 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갑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에서 나오는 감사를 받으시기 위해 빈 손들고 나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보물을 네 손에 들고 나와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예물을 손에 들고 나오면 그 예물 때문에 마음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 없이는 한 순간도 위기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하루아침에 나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가정이 평안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안심하고 앞날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를 받고 사는데 빈 손들고 나오거나 형식적으로 드리면서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마음이 담긴 예물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잘 읽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초막절을 지킬 때에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출로 인해 즐거워하라는 것은 이미 베풀어주신 것으로 인해 즐거워하며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많든 적든 창고에 들여놓을 수 있는 곡식을 주신 것에 감사하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어서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으로 즐거워하며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먼저는 영권입니다. 구원입니다. 그리고 인군의 복 - 관계의 복입니다. 그리고 물권은 생산의 복입니다. 이 복은 위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사회복지법인 '애양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100년 전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나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여수 지역에 만든 나환자촌입니다. 애양원이 유명해진 것은 지금부터 약 70년 전 손양원 목사님이 배출되면서부터 입니다. 그분이 그곳에서 사역하다가 공산당에게 순교를 당하고, 그 두 아들도 순교를 당해 유명해진 곳입니다. 그 애양원에는 손발과 얼굴이 뒤틀린, 한 마디로 소망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특별한 몇 가지가 있습니다. 주일예배, 새벽기도회, 수요예배, 금요예배에 모이는 숫자가 똑 같은 한국의 유일한 교회입니다. 한 사람도 결석을 안 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배에 다 나오는 교회. 따라서 그들의 가슴은 뜨겁습니다. 그들은 양계, 양돈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이 되면 거기에서 번 돈으로 헌금을 하는데 수천만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십일조는 말할 나위도 없고,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하면서 헌금을 많이 드리는지 모릅니다. 한 예로 손양원 목사님 기념관을 세울 때 예산이 10억이 조금 넘었는데, 그 가운데 상당한 부분을 그들의 손에서 나온 헌금으로 충당했습니다. 그리고 여수 지방에 400여 교회가 있는데, 그 중 40개 교회가 이 나환자촌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해서 드린 예물로 개척한 교회라고 합니다.
문둥병자에게 무슨 감사입니까? 문둥병자 입에서 무슨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그들의 손에 무슨 감사하다는 예물이 들려질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은혜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영적으로 누리고 보니 비록 육신은 망가졌지만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입으로 감사하는 것으로는 도무지 모자라 그 손가락이 없는 손으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들고 나와 하나님 앞에 예물로 드리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감사를 받으십니다. 이 감사야말로 진정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난주에 내드린 숙제 다 하셨습니까? 지난 1년 동안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내용들 5가지를 적어보자고 했습니다. 그 5가지 중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것에 감사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까? 아직 우리가 감사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내게 축복의 열매로 자라고 있습니다. 내가 겪었던 고통과 아픔의 순간,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은 언젠가 내게 큰 축복으로 열매 맺혀질 것입니다. 그런 힘든 일들이나 힘든 순간들이 내게 고통만 안겨준 채 지나버리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반드시 복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약속합니다. 고난은 축복을 가져다준다고 말입니다. 고난은 반드시 축복으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축복이 있음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워도 감사하기로 결단하십시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렇게 촉구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7) 믿음으로 감사를 선택하십시오. 별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햇빛을 주십니다.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영원한 천국의 영광을 주십니다. 신앙의 최고의 열매 - 감사 이 감사하는 자에게 주시는 더 놀라운 은혜와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