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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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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3 은혜 앞에 선 사람들 (행 5:17-32)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6-10-23 | 조회: 1462

은혜 앞에 선 사람들 5:17-32. 2016. 10/23. 주일 설교

 

이번 한 주간 기도원에 가서 이런 간증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20대 초반에 결혼한 한 여성이 23살 때에 남편을 여의고 말았습니다. 그 때 그녀는 임신 중이었고, 유복자로 딸을 하나 낳았습니다. 청상과부가 된 여인은 시장에서 온갖 장사를 하며 딸의 뒷바라지를 다 했습니다. 그들의 환경이 결코 넉넉하거나 여유롭지 못해서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던 딸이 불평할 때도 많았지만, 어머니는 묵묵히 딸의 모든 투정을 받아주며 정성을 다해 딸을 키웠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 덕분에 그 딸은 대학까지 나오게 되었고, 유학까지 다녀와서 어느 대학의 교수로 임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딸도 결혼을 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딸이 40이 넘은 어느 날 어머니를 보고 있던 딸의 마음에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만일 어머니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유학까지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머니의 큰 사랑 때문이다.’ 그런 마음이 들자 딸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원하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말씀하세요. 제가 다 사 드릴께요.” 어머니가 딸에게 뭘 원하겠습니까? 자식이 잘 되는 것만 보아도 마음이 기쁘고 행복할 텐데 말입니다. 그 어머니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말하는데도 딸이 자꾸만 다그치니까, 어머니가 이런 소원을 말했습니다. 주일에 교회 가는 것이 쉽지 않구나. 나를 교회까지 태워다 줄 수 있겠니? 돌아올 때도 문제가 되니까 네가 나와 함께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함께 돌아왔으면 좋겠구나.”

딸이 대학교수가 되고 결혼하면서 생활이 좀 넉넉해지자 좋은 집을 마련해 이사를 했기 때문에 교회가 멀어졌던 것입니다. 그 딸은 고등학교 때까지는 교회를 잘 다녔는데, 공부한다는 핑계로 그동안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은 딸이 그것쯤은 별로 어렵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꺼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딸이 교회에 나가자 교인들이 그 모녀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권사님의 오랜 기도가 드디어 이루어졌다.”고 축하해 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교인들에게 아무개 권사님의 딸이 훌륭한 대학교수가 되어 우리 교회에 나오셨다고 환영한다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런 환영을 받고 보니 딸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휴게실에 가서 잠시 쉬고 있는데, 자기의 동년배 쯤 되는 여인들 몇 명이서 옆 테이블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너무 크게 떠드는 바람에 그들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딸의 마음에 예수 믿는 것들도 별수 없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쾌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나 다른 의자에 앉아 있는데, 교회 장로님이 그녀를 찾아와서는 자기 아들의 기부입학을 청탁하는 것입니다. 평소 대학입학만큼은 공정한 실력으로 가야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참고 있는데, 옆 회의실에서 싸우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왔습니다. 무슨 회의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얼마나 심하게 싸우던지 회의하는 것인지 싸우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싸우면서 들려오는 말이 세상 사람들조차 잘 쓰지 않는 욕설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딸은 엄마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화난 얼굴로 엄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다시는 교회에 오지 마세요. 일요일이면 내가 소풍을 모시고 다닐 테니 다시는 교회 오지 맙시다.” 엄마가 왜 그러냐?” 묻자 딸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이렇게 말해 줍니다. 나는 평생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만 봤는데, 너는 교회에 딱 하루 와서 참 많은 것을 보았구나.”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에 와서 누구를 보십니까? 여러분의 눈에 사람이 보입니까? 하나님이 보이십니까?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언제나 은혜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보이는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있는 어느 교회치고 좋지 않는 면이 하나도 없는 -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반대로 이 세상에 있는 어느 교회이든지 다 나쁜 면만 있고 좋은 것이 하나도 없는 교회도 없습니다. 문제 없는 교회가 없습니다. 구석구석을 뒤져보면 어느 교회나 문제가 있습니다. 큰 교회라고 문제가 없습니까? 부흥하는 교회라고 문제가 없습니까? 성령 충만한 교회라고 문제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다 문제가 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정말 아름답고 본받고 싶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문제가 없습니까?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면에서 다 좋았습니까?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계속해서 사도행전을 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보셨지만, 한참 초대교회가 부흥하고 있을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통해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재산을 팔아 하나님께 드리고도 남편과 아내가 같은 날 죽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아나니아는 거짓말쟁이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삽비라는 성령을 속임으로 가장 추한 자리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왜 재산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린 아름다운 헌신의 부부를 하나님께서 이토록 강하게 징계를 하셨을까요?

 

그런데 단지 판 돈 전부를 다 드리지 않았다고 하나님이 그토록 가혹한 징벌을 내리셨을까요? 아닙니다. 성령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순결하기를 원하십니다. 거짓 영, 더러운 영들이 교회를 어지럽게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겉으로는 교회가 부흥하고 구제하고 선교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많은 행사를 하여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무엇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거짓의 영이 있는가? 진실의 영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행동에 대하여 간과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만약 여기서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간다면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와 같이 쉽게 생각하고 자기 자랑과 칭송을 위해 더렵혀 놓을 가능성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차례로 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의 눈은 의식하면서, 하나님의 눈은 의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사건의 반응을 기록한 11절을 보십시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5:11) 누가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한 마디로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이란 공포가 아니라 일종의 경외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초대교회는 더 든든하게 세워집니다. 더 많은 기적이 나타납니다. 교회의 능력은 바로 거룩함과 순결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교회가 깨끗해지고 순결해지면 더 놀라운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으로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교회를 칭송하였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2. 예루살렘 교인들이 세상 앞에 담대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된 이 세상 살면서 우리가 조그만 바람 소리에도 놀라고, 조그마한 것 가지고도 원망하고 불평하고 불만하고 마귀에게 놀아난다면 그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한다고 교인이 아닙니다. 그저 주일이나 지키고 '아멘'이라 하는 것은 교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한 쪽으로는 위로부터 은혜도 받고 능력도 받고 변화도 받고 새사람 되고 성령 충만하고 기적을 경험하고 온갖 은혜를 경험했다 할지라도, 한 쪽으로는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어떠한 세력이라도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이겨내는 베드로, 초대교회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들이 보인 행동을 주목해 보십시오. 자신들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사도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29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람은 대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한 종교 권력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을 전하지 말아라, 만약 우리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전하면 요절을 낼 줄 알아라 그렇게 말한 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사도들에게 주신 분은 천지의 대 주재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들이라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세상이 우리들에게 속삭이는 말을 들어야겠습니까? 양의 탈을 쓴 이리를 분별하지도 못하고 양의 목소리로 우리를 유혹하는 사단의 음성에 취해서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인 신분도 망각한 채 그냥 저냥 살아야겠습니까? 저는 바둑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보통 바둑을 한 400수정도 둔다고 합니다. 400수정도 되는 것을 바둑을 다 두고 나서 바둑판을 싹 밀고 어떻게 놓여있었는지 다시 복귀하라고 하면, 고수들은 이것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바둑을 TV로 중계하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합니다. 저는 한 수 탁 놓으면 그만이지 하는데, 생각하고 고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한 수 한 수 놓을 때마다 의미를 두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예상해서 헛되게 놓는 적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들을 때, 그 말씀이 내 삶 속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어떤 말씀으로 다가올 것인지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심각하게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화가 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에게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망과 낙심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삶 속 어디에 위치하고 있습니까? 잘 되고 부하고 평안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있습니까? 고난 속에, 즐거움 속에 가려서 그 말씀이 여러분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는 고난도 있고, 절망도 있고 그리고 십자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너머에 변치 않는 영원한 생명,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변치 않고 붙드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경에 오병이어사건이 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인 사건은 정말 놀랄만합니다. 그러나 그 일에 참여하였던 제자들은 오병이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큰 은혜와 기적과 역사의 자리에 참여했었는데도, 그것이 내 삶 속에 무슨 유익을 주는지 몰랐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한다.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고난과 두려움, 염려사이에서 희망을 말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것과 생각하는 것 그것만 듣기 때문에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환경이 주는 이야기만 들려옵니다. 나아가 그 하나님 말씀이 주는 희망과 소망의 메시지를 그냥 지나쳐 듣습니다.

 

3. 증인이냐 목격자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오늘 아침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차를 타고 시내를 다니다 보면 목격자를 찾습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대개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 가족이 사고에 대한 작은 제보라도 얻어 보고자 걸어놓은 것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제보자에게 보상하겠다고 보상금까지 밝힌 것도 있습니다. 눈물겹게 호소하며 제발 부탁드립니다고 써놓은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찰 관계자 이야기를 들어보면 좀처럼 제보가 들어오지 않는답니다. 분명히 목격자가 있는데도 제보를 하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추정해 보면 몇 가지 이유가 있답니다. 우선 남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다음으로 제보하면 오라 가라 하고 또 분쟁이 생길 때 입장 곤란한 일이 생길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나 말고 다른 목격자들도 있을 것이라고 미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목격자와 증인은 별도의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목격자는 사건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자기 눈으로 똑똑하게 보고 체험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증인은 목격한 것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입으로 자기가 보고 체험한 것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실제로 목격을 하고도 증언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그냥 목격자로 남아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목격하고 적극적으로 증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증인입니다.

 

성경에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냥 목격자로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목격했습니다. 자기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직접 체험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목격한 것을 자기만 알고 지나갑니다. 다른 하나는 증인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도 분명히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증언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와 관계없는 사람에게 열정을 가지고 증언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증인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결코 목격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려면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리를 먼저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빨리 가서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잃은 양들을 찾아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학려 들지 않으면서 이웃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지는 않습니까? 내 가족이 구원받기를 원합니까? 이 부패한 한국 사회가 치료받기를 원합니까? 희생 없이 말입니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을 위해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그들이 구원 받기를 기도하는 것은 보통 큰 희생이 아닙니다. 제가 몇 사람을 놓고 시간을 내어 기도를 해보니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쁜 일과를 끝내고 피곤에 지쳐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시간인데, 몇 사람을 생각하면서 계속 엎드려 기도한다는 것은 틀림없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만한 대가도 치르지 않고 어떻게 죽은 영혼이 살아나겠습니까? 어떤 경우에는 인격적으로 멸시를 받릉 수도 있습니다. 돈을 써야 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돈을 쓸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바쁜 세상에 중요한 약속이나 스케줄을 뒤로 미루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만나 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나의 형편을 이해해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조그마한 수고 하나 하나가 희생의 제물이 되어 활활 타오르며 향기를 토할 때 죽은 생명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일부터 온 교인들이 나와 기도하려고 합니다. 이제 주의 은혜 앞에 서십시오. 안하던 것을 하려면 힘도 들고 피곤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우리는 어떻하시겠습니까? 기도는 믿음의 사람들의 특권이며, 비밀의 세계입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역사의 거룩한 발자취를 남기고 간 사람들은 그들이 배웠든 배우지 못했든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의 역사 속에서도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서 인간의 힘으로는 가히 상상도 못할 일들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크고 은밀한 일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위기가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사면초가와 같이 아무리 찾아보아도 뚫고 나갈 길이 없는 것 같은데 기도하면 길이 보입니다. 최선의 길이 보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일을 성취하는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일이 우리 앞에 일어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밝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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