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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24 미성숙의 병 (히 5:11-14)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6-07-24 | 조회: 1405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두가 건강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건강을 위한 규칙적인 운동, 또 식습관의 변화를 주고, 정기점진을 통해 자신의 건강관리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을 해도 심각한 질병이 우리를 덮쳐 올 때, 그 앞에서 하얗게 질려버리는 우리의 연약함이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했지만, 정말 우리 주변에 희귀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 해전에 텔레비전에 특이한 병을 방영해서 시청자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프로제리아(Progeria)'- 길포드 증후군(Gilfordn Syndrome) - 라는 병이었습니다. 아마 사람 이름을 딴 병명 같습니다. 이 병은 아이들에게만 생기는 병이었어요. 성장을 멈추는 병이지요. 일명 조로증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성장이 멈추는 것에 반해 세포조직은 빨리 늙어버리는 겁니다.

 

그 당시 TV에서 이 병에 걸린 아이들과 부모들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참담했습니다. 한 아이를 집중하여 조명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아이의 몸집이 유치원생인 6살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얼굴은 40대였습니다. 이 아이들은, 성장은 멈추지만 급속도로 세포조직이 빨리 늙어가서 대부분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다 20세 정도가 되면, 몸집은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이나 얼굴은 환갑을 넘긴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아이 부모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몸집은 자라지 않고, 모든 기능은 빨리 늙어서 자신들보다 먼저 죽어 가는 아이를 둔 부모, 그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 그 날 방송에 나온 부모들은 한결같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저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같이 울었습니다. "세상에 저런 병도 있구나, 정말 처참한 병이구나!" 만약 그 병에 여러분의 자녀가 걸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아이가 20세가 다 되어 가는데 몸집은 초등학교 2학년만 하고 얼굴은 저보다 더 늙었어요. 이제 2년밖에 살지 못합니다. 그렇게 무덤을 향해 달려간다고 하면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의 육체에만 이런 병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에도 이와 비슷한 병이 걸릴 수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병은 바로 '미성숙의 병'입니다. 우리는 매 주마다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우리 영혼의 성장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질병을 다루고 있는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병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병은 이미 살폈습니다. 오늘은 미성숙의 병을 다룰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본문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511절에서 14절까지만 읽었지만, 사실은 6장 마지막 절까지 계속됩니다.

 

히브리서에는 다섯 가지 경고가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엄중한 경고문이 저와 여러분이 읽은 오늘 본문 가운데 있습니다. 511절부터 6장 마지막 절까지 괄호를 묶어야 합니다. 510-11절을 보세요.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지금 히브리기자는 멜기세덱의 얘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6장 마지막 절까지 멜기세덱의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다른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71절에서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라고 연결됩니다. 우리가 히브리서를 정상적으로 이해하며 읽기 위해서는 510절에서 71절로 건너뛰어 읽어야 합니다. 이것이 511절부터 6장 마지막 절까지 괄호를 묶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멜기세덱의 얘기를 하다 말고 히브리 수신자들에게 이 괄호의 내용으로 강력한 경고를 발하는 것입니다.

 

이 경고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미성숙의 병을 조심하라는 겁니다. '프로제리아(Progeria)' 라는 병에 걸리면 너무나 처참합니다. 마찬가지로 미성숙의 병에 걸리게 되면 우리 영혼이 너무나 암담한 결과를 맞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무너지기 때문에 이 병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발하시는 겁니다.

 

자라나지 못하는 신앙 - 특히 영적으로 병들었을 때,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뿐더러 점점 더 신앙의 퇴보는 자신도 힘들지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된 몸된 교회의 아픔이요. 고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지금 이 병에 걸려 있는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영적으로 거듭났지만, 더 이상 자라기를 멈춘 사람, 성장 도중에 갑자기 성장을 멈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 프로제리아 병에 걸리면, 육체적인 조로증과 똑같이 성장이 멈출 뿐만 아니라 영적인 노화현상을 나타냅니다. 노화현상이란 세포가 살아서 분열하고, 변화하며, 자라는 성장을 정지한, 세포가 죽어가는 현상입니다. 성장이 멈추었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이고, 변화를 그만두었다는 것은 도태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나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어느새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 채 미성숙의 병에 걸려든 것은 아닙니까? 영혼이 자라나지 않고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니며,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며, 부정적인 말을 하며, 예배와 가정생활이 완전히 분리되어 따로따로 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 삶에서 엉겅퀴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한번 자신을 돌아 보기를 바랍니다. 미 성숙의 병에 걸린 자들은

 

1. 단단한 식물을 못 먹게 됩니다. (12)

여기 12절에 뭐라고 이야기를 합니까?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무슨 말입니까?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요즘 말로 하면 신앙생활을 오래 동안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지 세월이 많이 지나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야 할 연륜인데 여전히 말씀의 초보, ABC도 몰랐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러한 상태를 단단한 음식을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젖을 먹는 상태는 어린아이들이고,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5:14)입니다. 그래서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한다는 것은 여전히 영적으로 어린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인 성도들의 신앙의 형편이었습니다. 미성숙의 병에 걸린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진단해 보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성인 아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어린아이들은 참으로 귀엽고 아름답습니다. 특히 활짝 웃는 모습은 천사의 얼굴과 같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에게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자기밖에 모르고 이기적입니다. 부모의 입장은 생각도 않고, 집안 형편이 어떤지 걱정도 않고, 자기밖에 모릅니다. 둘째, 참을성이 없습니다. 조금만 아파도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조금만 배가 고파도 난리가 납니다. , 분별력이 없습니다. 먹을 것인지 먹지 못할 것인지 구분을 못 하고, 아무거나 먹습니다. 이로운지 해로운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어린아이는 분별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누군가가 돌보아 줘야지 내버려두면 위험합니다. 내버려두면 혼자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도 꼭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이기적인 사람,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입니다. 남을 생각할 줄 모르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며 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어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고, 자기 유익만 챙기려고 하는 사람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입니다. , 참을성이 없어 조금만 화가 나도 버럭 화를 내고, 조금만 기분 나빠도 참아주지 못하는 사람이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희생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내 시간을 바치고, 내 자존심을 꺾어버리고, 관계에 있어서 내가 양보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내가 지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헌금도 제대로 드려본 적이 없습니다. 내 재산의 얼마를 뚝 잘라서 불쌍한 사람을 위해 내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형식적으로 바칠 뿐입니다. 영적인 미성숙의 병에 걸린 자들의 특징입니다. 그 결과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납니다.

 

2.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여기서 '경험'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들을 체험하지 못하는 겁니다. 체험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계시록에 일곱 교회를 언급하시며 진단해 주십니다. '라오디게아'라는 교회가 있었는데 굉장히 화려하였습니다. 이 교회는 사람, 특히 부자도 많아 그 세력이 대단했던가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너희가 차든지 덥든지 하라. 너희가 미지근하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내칠 수밖에 없다."라고 하십니다. 교회는 나오나 하나님과의 만남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변화시킨 체험도 없습니다. 그저 교회만 왔다갔다합니다. 이것이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미지근한 자의 모습입니다.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나는 부요하다.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제발 눈을 떠서 너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게 하라.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너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하라!"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입니다. 세월은 지나가고 연수는 높아갑니다. 교회에서 직분은 높아지고 상식은 많아지는데, 그 영혼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체험이 없습니다. 말씀 앞에 울어본 적도 없고, 말씀을 붙잡고 기뻐해 본 적도 없고, 말씀을 너무너무 신뢰하기에 밤잠을 설쳐본 경험이 한 번도 없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이 아침!! 성숙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어야 합니다. - 아멘. 계속적으로 자라가는 성도들은 변화에 대한 갈망이 강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저절로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망설이지 않으시고 이 병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해 주십니다. 11절을 보세요.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여기 '듣는 것이 둔하므로' 이것이 바로 영적 미성숙에 걸릴 수 있는 원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둔하다'는 말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IQ가 나쁘다' '대학을 못 나왔다' 이런 말이 아닙니다. 오늘 이 '둔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노드로스'입니다. 두 단어로 합성된 단어인데, 우리말로 '태만하다'는 뜻입니다.

 

같은 단어를 612절에서는 '게으르지 아니하고'라고 했어요. 즉 게으른 것, 영적으로 게으른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게으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데 태만하고 열정이 없는 겁니다. 내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해 무언가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없고, 내 영혼을 성숙시키는 일에 등한합니다. 게으르고 태만한 것, 이것을 가리켜 '듣는 것이 둔하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대한 열정이 마음에서 식어질 때 우리 영혼은 미성숙의 병에 걸린다고 말씀합니다. 영적 갈망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미성숙의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단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14절입니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14절 마지막에 '연단을 받아'라고 했어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연단을 통하지 않고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더구나 소중하고 값진 것일수록 더 많은 연단의 과정을 겪어야만 합니다. 연단을 통해서 금은보석이 만들어지고, 연단을 통해서 아름답고 귀한 목재가 탄생하고, 연단을 통해서 짐승들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연단의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연단의 과정을 겪을 때, 아무리 그것이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 연단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질 엄청난 보상이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연단이 우리에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싫어하는 고난과 환란의 연단을 주십니까? 인간은 연단을 통과하지 않으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고약한 기질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역사의 자국을 남긴 큰 그릇으로 쓰여진 사람들마다 다 밤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신앙이 좋다고 하는 분들을 가만히 보면 대부분 연단을 통과하신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치 않는 인생의 연단을 맞을 때 우리가 명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신앙의 공식처럼 기억을 해야합니다.

 

하나는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5)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세상을 살면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만신창이가 되어서 생을 끝마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긍휼이 많으신 주님은 나와 나의 필요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 때문에, 정확한 때에 도와주시기 위해 늘 은혜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날 때 우리의 피난처 되신 주의 품에 바짝 다가가 안겨야합니다. 주님께 간구하면, 때를 따라서 채우시며 위로해 주시는 손길이 항상 우리 곁에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당신을 주목하시고, 당신의 아픔을 소중히 여기시며 나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시고, 정확한 때에 필요한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굉장히 큰 그림을 말합니다. 이 그림은 우리가 금방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정신을 차릴 수 없고 해답을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인생을 큰 그림을 가지고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께 주목해야 합니다. 이 큰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우리 당대에서 보지 못하고 다음 세대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아름답고 선한 뜻과 큰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 연단을 통해 우리는 선악을 분변하는 성숙함에 설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러 나오는 목적은 선악을 분별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선악을 분변(分辨)하기 위함입니다. 교회에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선한가, 악한가? 해가 되는가, 덕이 되는가? 가정과 직장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해가 되는가, 덕이 되는가?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이 선악을 분변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내 주장, 내 생각을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을 주장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도 리더십을 위해 쓰여 진 책 가운데 꾸준히 읽히는 책 가운데 밥 포드의 하프타임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가운데 성공추구에서 의미 찾기로 바꾸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만을 찾아서 몸부림치는 인생의 신기루 같은 성공은 인생의 모든 가치를 파괴시키고 우리를 허무 속에서 떨게 합니다. 사람이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결산이 가까울수록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에 내 삶을 바치며 살아 왔느냐 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느냐, 내 이름이 남느냐, 그런 것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질수록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의미와 보람과 기회를 발견하고 하나님, 정말 하나님이 주신 일 대문에 내 인생은 보람 있었고, 신바람 나고, 놀라운 인생이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 평생의 보람 있는 가치를 발견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성숙한 삶, 건강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행복을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바라보시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십니다. 우리를 바라보시며 기뻐하시고, 우리를 바라보시며 행복해 하시며, 우리를 바라보시며 미소를 지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십시다.

 

여러분, 삶이 변화되지 않고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까? 이제는 정말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열고 주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머리로 아는 교리 지식, 반복하여 회개하는 삶에 머무르지 말게 하소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가슴을 찢고 부르짖어냐 합니다. 사도 바울도 말했습니다. 고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고 깨닫는 것도 어린아이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다가 그러나 장성한 후에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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