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사자가 사랑에 빠져서 결국 혼인해서 살게 됩니다. 둘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합니다. 소가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참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참을성은 한계가 있습니다. 둘은 마주 앉아 얘기 합니다. 문제를 잘못 풀어 놓으면 큰 사건이 되고 맙니다. 소와 사자는 다툽니다. 끝내 헤어지고 맙니다. 헤어지며 서로에게 한 말 “난 최선을 다 했어”였습니다.
그러나 나 위주로 생각하는 최선, 상대를 못 보는 최선, 그 최선은 최선일수록 최악을 낳고 맙니다.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자기의 입장에서만 모든 것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부부간에,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인에게 있어 최대 위기가 있다면 가정의 위기입니다. 가정 위기의 기초는 바로 부부생활의 위기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에 우리나라에서 이혼한 가정이 11만 가정입니다. 이혼이 16만 6600건으로 최고치에 달했던 2003년 이래로 이혼건수는 감소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도 OECD 국가 중에서 높은 편에 속합니다. 법적인 부부생활이나 별거중인 가정까지 감안하면 심각한 위기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기관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가정이고 또 하나는 교회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 사회의 가장 기초단위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늘 교회와 가정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와 가정 안에 문제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문제가 없어야 할 곳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문제가 많은 곳이 바로 가정과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부부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모든 부부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왜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해서 부부가 되어 살아가는 그 삶에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까? 사랑하기에 결혼하여 함께 살던 부부가 왜 같이 사는 것보다 헤어져 홀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으면서까지 갈라서려 하는 것입니까? 서로 결혼 생활을 하면 모든 것이 다 될 줄을 알았는데 가정이 무너지는 이유 중 우리가 놓치기 쉬웠던 것이 바로 다름에 대한 이해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해서 부부가 되어 살아가는 그 삶에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까? 사랑하기에 결혼하여 함께 살던 부부가 왜 같이 사는 것보다 헤어져 홀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으면서까지 갈라서려 하는 것입니까? 서로 결혼 생활을 하면 모든 것이 다 될 줄을 알았는데 가정이 무너지는 이유 중 우리가 놓치기 쉬웠던 것이 바로 다름에 대한 이해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1. 먼저 아내의 역할입니다.
1절에 보면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여기서, ‘순종’이라는 말은 ‘복종’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을 하면 “남성위주의 사고 아니냐?”, “너무 구태의연한 말 아니냐?”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슨 뜻일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아내된 자들아,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질서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내들에게 ‘순종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6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사도 베드로는 아내의 역할을 말하면서 사라의 예를 드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뭐라고 불렀다고 되어 있습니까? “주”, 즉 “주님”이라고 칭하면서 복종했습니다. 사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많은 실수와 허물이 있었습니까? 자기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어요. 롯과 갈등이 있을 때에도 삼촌으로써 얼마든지 땅을 먼저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100세에 낳은 아들을 어느 날 갑자기 말도 하지 않고 데리고 나아가 몇날 며칠을 있다가 들어와요. 이런 남편을 보면서 어땠을까요? 속상하지 않았겠습니까?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답답했을 거예요. 그런데도 사라는 “당신도 남편이냐?” “당신이 남편으로서 우리 가정에 한 일이 무엇이냐?”고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처럼 허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라고 칭하며 복종했습니다. 결국 그 가정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경에서 믿음으로 세워진 가장 대표적인 가정이 되었습니다.
아내 된 성도 여러분, 남편에게 어떻게 하라고요? 순종하셔야 합니다. 여기 1절에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와 같이’ 라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바로 그 앞에 나오는 ‘죄를 범하지 않으시고 거짓도 없으셨지만 욕을 당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며 그리고 나무에 달려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적인 모습을 본받아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나 하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신 순종처럼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순종은 남편이 가지고 있는 어떤 장점이나 사회적 지위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완력이나 금전적인 능력 때문에 순종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질서를 깨닫는데서 오는 순종입니다. 이 순종의 가장 아름다움은 남편의 권위의 회복입니다. 오늘날에는 남편의 권위가 많이 무너졌습니다. 아버지의 모델을 잘 볼 수가 없고,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집니다. 한국에서 자녀를 명문학교에 입학시킨 부모들이 모여서 결론을 내린 것이 있습니다. 자녀의 체력이 좋아야 하고, 아버지의 쥐꼬리 월급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재산이 있어야 하고, 엄마의 정보력과 분석력이 뛰어나야 하며, 아버지의 무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교육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풍자입니다. 엄마, 할아버지는 있는데 아버지는 없습니다. 가정에서의 남편, 아버지의 권위가 무시되고 있습니다. 요즘 대한민국 남자로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를 맞았습니다. 나이 40이 넘으면 벌써 직장생활에 위기를 느껴야 하고, 50이 넘으면 서서히 패물 취급을 받는 것도 서러운데 밥 먹고 살고, 자식 교육시키는 것이 어찌 이다지도 힘들고 고달픈지...뒷 치다꺼리하다 보면 벌써 은퇴할 나이가 돼 버리고 허망한 인생에 잠 못 이루는 시대를 오늘의 남자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도 속으로 멍들고, 울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이 오늘의 모습이 아닌가? 부인들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가정의 위기는 권위의 상실에서 왔습니다. 권위가 없는 곳은 가정의 보호막이 사라진 것과 같습니다. 권위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남편으로서의 권위, 혹은 아버지로서의 권위가 무너진 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권위로 둘러싸인 세상 속에서 권위와 어색하거나 혼란한 관계로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절대로 아이들 앞에서 남편 흉을 보면 안 됩니다. 권위에 흠집을 내지 마십시오. 그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마치 머리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식물인간이 됩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질서 아래에서 안정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권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순종하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는 가정의 리더십을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가정에 리더십의 상징인 아버지를 주신 이유는 땅의 아버지를 통해서 자녀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를 아버지 되게 하는 것이 아내의 책임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면 자녀들이 또한 리더십의 상징을 잃어버립니다. 아동 범죄 연구소에 나온 통계를 보니까 교도소에 수감된 문제아들의 45%는 아버지와 함께 자라나지 못했고, 다른 40%는 아버지를 미워하며 자라났고 다시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준 제1원인은 어머니인 것으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자기의 권세를 주장하기만 한다면 아무도 그 권위 앞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머리되심을 행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을 존중하고 따른다는 것이 남편이 돈을 잘 벌거나 사회적 능력이 있거나 혹은 훌륭한 인격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주 안에서 허락한 남편이기 때문에 주님의 권위를 인정함으로 주님이 허락하신 남편의 머리됨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 아내의 순종이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는 것이고 특히 아내가 정말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2-4절에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마음에 숨은 사람’은 ‘내면의 사람’ 혹은 ‘중생한 영혼’을 가리킵니다. 남편은 부인의 내면의 사람을 봅니다. 2절에,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고 했습니다. '본다'는 원문의 뜻은 ‘불신 남편이 믿는 아내의 행위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직 남편이 믿지 않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교회도 보면 많은 경우에 먼저 부인이 교회에 나오고 그 다음에 남편이 따라 나와서 부부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일이 되면 남편이 차를 태워 부인을 교회에 내려 주고 예배 끝날 때까지 연습장 가서 운동하거나 아니면 어디 가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예배 시간 끝날 때쯤 교회에 와서 태워 갑니다. 그러다가 조금 일찍 오는 날이면 마지못해 식당까지 끌려와 점심을 얻어먹고 갑니다.
일단 발걸음이 식당까지 오면 그 다음에 본당까지 오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마당-식당-본당까지 불신 남편의 발걸음을 옮기기까지 부인의 역할이 큽니다. 어떤 부인은 불신 남편이 하도 안 오니까 주일마다 남편 신발을 교회에 가지고 와서 “주님 남편 신발 먼저 왔습니다. 발도 오고, 몸도 오게 해 주세요” 불신 남편일지라도, 무능력한 남편일지라도, 까다로운 남편일지라도 만일 여러분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남편에서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2. 내면의 사람을 가꾸라 -
2-4절에,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마음에 숨은 사람’이 ‘내면의 사람’ 혹은 ‘중생한 영혼’을 가리킵니다. 남편은 부인의 내면의 사람을 봅니다. 2절에,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고 했습니다. '본다'는 원문의 뜻은 ‘불신 남편이 믿는 아내의 행위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는 뜻입니다.
Ⅱ. 남편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7절 말씀입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그 첫 번째가 ‘동거하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동거”라는 말의 의미는 “함께 산다(쉬노이케오) ”라는 말로서 “시간을 낸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거하려면” 시간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편 된 여러분, 직장 일을 위해서만 시간을 내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녀들을 위해서만 시간을 내지 마십시오. 아내를 위해서도 시간을 내보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을 하숙집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아내와 함께 시간을 나누십시오. 특히 동거하라는 동사에 수식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식을 따라’라는 말입니다. ‘지식을 따라’라는 말은 아내의 형편과 아내의 상태를 잘 알라는 것입니다. ‘아내의 기분이 어떤가. 아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는가? 왜 아내의 마음이 우울한가? 어떻게 하면 아내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줄 수 있는가?’ 그런 것을 잘 생각하며 거기에 맞추어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는 때대로 변하는 아내의 마음과 감정 상태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적절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때로는 아내가 못마땅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리 자주 마음이 바뀌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사소한 문제 때문에 삐치고 마음이 토라지는지 이해되지 않아 기분 상할 수도 있습니다.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해서 더 많이 마음 써 주면 좋으련만 남편보다는 자식들에게 더 뭔가 노력하고 더 많이 애를 쓰는 것 같아 때론 서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지금 아내의 상태가 어떤가를 늘 살피는 것이 남편이 해야 할 일입니다. 내 감정을 따라서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아내를 이해하려 해야 하고, 의도적으로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려 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할 이유는 더 연약한 그릇이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남편보다 육체적으로 연약합니다. 연약하다고 해서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라 연약할수록 귀히 여겨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사시면서 병들어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병들어 연약한 사람들일수록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찾아가셔서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것이 연약함을 귀히 여겨주는 모습입니다.
귀히 여겨준다고 하면서 그들의 약함을 모른 척 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마음입니다. 아내를 귀히 여겨주는 사람일수록 아내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내가 감싸 줍니다. 최소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누군가에게서 약점이 보이면 그 약점을 이용해서 내가 유익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약한 존재일수록 그 약점과 부족함을 내가 짊어집니다. 부부가 서로 그래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 그런 존재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는 부부를 ‘돕는 배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부는 서로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약점과 부족한 것이 있으면 비난하고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약함을 함께 지고 가야 합니다. 아내의 약점은 남편이 메어주고, 남편의 부족한 점은 아내가 나눠져야 합니다. 그것이 돕는 배필입니다.
세 번째는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않을 때 기도가 막히기 때문입니다.
7절 하반절에 -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아내와 다툼이 생기고 거리가 멀어지면 기도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어디 남편만 그렇겠습니까. 아내의 기도줄이 막히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부부싸움을 하고 가정에 불화가 생기면 기도가 잘 나오지 않고 기도를 해도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혹시 오늘 여러분의 기도 줄이 막혔다면 그 원인이 여기에 있지 않는지 살펴보십시오. 세상에 어려운 것이 부부관계입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혈연관계이기 때문에 헤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남남이 만나 함께 사는 부부는 혈연관계가 아닙니다. 언약 관계입니다. 언약관계는 부모 자식 관계처럼 자연스레 되지 않습니다. 쌍방 간에 많은 노력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IMF로 인하여 실직 당한 어느 가정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IMF로 갑자기 실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에게 차마 말을 못하고 아침이면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척했습니다. 몇 달 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봉투하나를 쥐어 주었습니다. 산 위에 가서 그 봉투를 펴보니 돈 3만원과 함께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여보, 당신은 직장을 잃어도 내 남편이요. 돈이 없어도 내 남편이요. 훌륭한 사람이 되어도 내 남편이요, 못나도 내 남편이에요. 당신이 있는 곳에 나도 있고, 당신 가는 곳에 나도 가고, 당신 사는 곳에 나도 살아요. 그러니 절대로 낙심하지 마세요. 당신은 어디까지나 우리 집 가장이요, 우리의 머리예요. 우리는 당신을 받들고 당신과 함께 살겠어요. 제가 무슨 일이든지 도울 수 있는 것을 돕겠습니다. 당신은 잘 몰랐겠지만 당신이 내 옆에 있어 준다는 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진작 이렇게 이야기하지 못해 죄송해요, 하지만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요!. 당신이 사랑하는 아내가"
그 쪽지를 읽고 난 다음, 남편은 얼마나 마음에 감동이 되었는지 눈물을 흘리며 "나를 인정하는 아내가 있구나! 그렇다면 내가 용기를 잃을 필요가 없다! 풀빵 장사라도 하자"고 결심을 했고, 그 남편은 그 길로 나가서 풀빵 장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풀빵 장사면 어떻고, 리어카 장사면 어떻습니까? 날 사랑하고 날 존경해주는 아내가 있고 가족이 있으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의 위로가 있는 가정 행복합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했습니다.
아내 여러분, 즐거운 마음으로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겉모습만 썩어 없어질 것으로 치장하지 마시고 오직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부터 단장하십시오. 그리할 때 불신자인 여러분의 남편도 달라질 것입니다. 남편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내를 지으신 창조 원리의 지식을 따라 동거하십시오. 남편 여러분보다 아내가 더 연약한 그릇이므로, 또 함께 천국에 들어갈 영적 동반자이므로, 무엇보다도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여러분의 아내를 귀히 여기십시오. 그리할 때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