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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8 (어버이 주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엡6:1-3)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6-05-08 | 조회: 1472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버이의 은혜를 다시 한번 가슴 속에 되새기며, 감사를 드리는 주일입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깜짝 놀라는 것이 노인 공경과 부모 공경입니다. 서양인들은 대개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면 완전히 독립을 합니다. 한 집에서 부모를 모시고 함께 사는 가정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연로하셔서 거동이 불편해지면 곧바로 양로원에 모십니다. 이렇게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서양인들이 한국에 와서 자녀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모습을 보면 놀랄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우리나라도 서서히 서구화되어서 핵가족화 되는 가정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모시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병든 부모님을 버리거나 전화 한 통 안 걸거나 집에 한 번도 찾아뵙지 않는 자녀들이 늘어만 갑니다. 심지어 보험금을 타먹겠다고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아들도 가끔씩 나타납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효()가 땅바닥에까지 떨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경각심을 주는 한편의 동화책이 있습니다. 정채봉님이 쓴 멀리 가는 향기라는 책인데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어떤 집에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손자인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간혹 다투었습니다. 처음에는 소년이 들을세라, 할머니가 들을 세라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토닥거렸습니다. 그러나 차츰 날이 감에 따라 부부싸움 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소년도 듣게 되고, 할머니도 듣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싸움 소리가 담을 넘어가게도 되었습니다. "당신 어머닌 비위생적이어서 함께 못살겠어요." "오늘 신경정신과에 다녀왔어요. 내 병명이 무엇인지 아세요?" "당신 어머니가 남한테 망신 사는 일만 저지르니 내가 노이로제에 걸릴 수 밖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소년의 어머니는 할머니를 보면 고개를 돌렸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소년의 아버지도 할머니 방 앞을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어느 날 또 죽는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시퍼렇게 되어서 외쳤습니다. "나를 택하든지, 당신에 어머니를 택하든지, 둘 중 하나를 말해요!" 마침내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합의를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묵을 방을 하나 얻어서 내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낙엽이 우수수 지는 날, 온 식구가 달려들어서 할머니의 이삿짐을 꾸렸습니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물고 상자를 묶었고, 어머니는 고무장갑을 끼고 거들었습니다. 소년은 종이와 연필을 꺼내서 적기 시작하였습니다. 헌 옷장 1, 전기장판 1, 담요 1, 밥통 1........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 왜 그런 것을 쓰니?" 소년이 대답하였습니다. "다음에 어머니를 내 보낼 때 내가 챙겨드릴 품목이에요." 웃고 넘길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말 이 시대가 성경에서 경고했던 대로 패륜(悖倫)과 배은망덕(背恩忘德)의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 딤후3:1-2절에 보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구구절절 오늘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요즘 사회학자 가운데 에이지퀘이크(agequake)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이라는 ‘age’와 흔들린다는 ‘quake’를 합해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지진을 영어로 어스퀘이크(earthquake)라고 하는데 땅이 크게 흔들린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에이지퀘이크란 말은 사회의 구성원들의 연령 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나서 사회에 큰 충격파를 던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특히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사회 경제적인 충격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 위해 생겨난 말입니다.

 

이런 노령화 사회현상이 촉진되면서 이미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노인들의 사회 보장 문제가 최대의 사회 현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의의 뒤안길에서 아직도 논의되기를 기피하고 있는 최대의 숨겨진 또 하나의 사회 현안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소위 노인 학대의 문제입니다. 어느 기관이 조사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 노인의 8,2% 무려 10%에 가까운 노인들이 그들의 자녀 및 가족원으로부터 학대받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 못지않은 빠른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던 한 시대가 있었다면 바로 1세기의 로마제국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 로마제국이 전 세계를 정복하며 가져온 팍스-로마나의 식민지 문화, 개방적인 로마 문화는 당시의 기존 전통 윤리에서 사람들을 해방하기 시작했고 가정 붕괴가 촉진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바울사도는 소아시아의 가장 로마적인 도시였던 에베소에서 복음을 받아드리고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들이 된 에베소 교회를 향해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중에 효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효에 대해서 1-3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이 효를 해야 합니까?

 

첫째,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하나님께서 보실 때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은 지극히 옳은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옳다는 것은 자연 법칙’(Natural Law)이라는 겁니다. 인간이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인간도 아니라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부모가 나하나를 위해 어떤 희생과 사랑을 쏟았는가를 알아야합니다. 여러분, 가시고기와 논바닥에 사는 우렁이를 아실 것입니다. 부성애가 강한 가시고기와 모성애가 강한 우렁이가 떠오릅니다. 가시고기는 소설로서 더욱 유명합니다가시고기는 산란기에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면 숫놈은 알이 부화될 때까지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고 침입자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때 죽은 아비의 사체를 다 뜯어 먹습니다. 그렇게 다 주고 생을 마감하는 작은 물고기입니다가족을 위해 수고하다 조용히 한 세상을 마감하는 아버지들의 함축된 모습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또 우렁이는 제 몸에다 알을 낳으며 새끼들은 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성장합니다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먹이로 주고 빈 껍데기가 되어 조용히 물에 떠내려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 아침! 묻습니다. 가족을 보호하고 울타리가 되는 아버지의 희생과 살을 깎아 먹이는 어머니의 희생은 어디에서 보상받게 될까요?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그들은 우리 인생의 울타리이십니다. 그 울타리 안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분명 부모님은 우리의 자랑입니다. 여기 1절에 1절에서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면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 모시고 살아도, 아무리 많은 용돈을 드린다고 해도,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 드린다 해도,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가난한 살림 때문에 제대로 대접해 드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말씀을 잘 순종하면 그게 부모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십계명 중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공경하라'는 히브리어 ‘k bad'무겁다'는 뜻입니다. , ‘공경한다'는 것은 무게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신 부모님께는 우리가 도저히 흉내내거나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무게, 경륜의 무게, 인식의 무게가 있는 법입니다. 바로 그 무게를 인정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 무게를 인정하면 귀히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무게긍지와 동의어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님 인생의 무게를 존중한다는 것은 자식으로써 부모님에 대한 긍지를 품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요, 만약 이 긍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부모님의 무게를 인정하기는커녕 깃털보다 더 가벼이 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효도란 함께 모시고 사느냐 아니냐, 용돈을 얼마나 드리느냐, 얼마나 호강을 시켜 드리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참된 효도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에 대한 긍지 여부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班衣之戱(반의지희)라는 말이 있어요. 아들이 늙은 부모를 위로하려고 색동 저고리를 입고 재롱부리는 것을 말합니다. 어버이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다 큰 자식이 어릴 때 입던 옷을 입고 부모 앞에서 애기처럼 재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겁니다. 늙고 병들고 힘없는 부모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효심이에요. 여러분, 나이가 들면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으며 무엇을 보아도 즐겁지 않으며 무엇을 해도 재미있지 않아요. 젊을 때와 같은 즐거움이 없어요. 이 사실을 안 자녀가 마음으로 울며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리게 위하여 재롱을 부립니다. 여기에 효심이 있어요.

 

요즘, 자식들의 고민이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가정이 한 둘이 아닙니다. 특히 맞벌이 부부라든지,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환경이 안 되어있는 분들은 양로원이나 시설에 보내는 것에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을 낳아 주신 부모님이 단지 귀찮아서, 혹은 남의 손을 빌어 형식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양로원에 보내는 것은 물론 천륜을 어기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에 대하여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자식이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부모님께서 노인들을 위해 특수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양로원에서 같은 또래의 노인들과 함께 살기를 진정으로 원하시기에 양로원에 모셔다 드리고 정기적으로 찾아뵙는다면, 그것은 결코 불효가 아닙니다. 도리어 참된 효도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한 집에 모시고 살면서도 함께 사는 애완용 강아지만도 못하게 여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씻을 수 없는 불효입니다. 따라서 내 부모님의 재산이 얼마냐, 내 부모님이 얼마나 출세한 분이냐, 얼마나 배운 분이냐에 상관없이, 그 분의 자식으로 태어난 데 대한 긍지가 참된 효도의 필수조건이 됩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도 존중도 섬김도 오직 이 긍지로부터만 비롯되는 까닭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 유치부에 다니는 아이가 어느 날 집에 돌아와서 무엇을 열심히 외우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무엇을 외우고 있나 가만 들어보니 십계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제5계명을 외우는데 네 부모를 공격하라. 네 부모를 공격하라고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공격이 아니고 공경이야 공경!” 그러자 아이가 아빠, 공격하라와 공경하라는 어떻게 달라요?”라고 묻자 아빠가 대답했습니다. 공경은 아빠 말씀을 잘 듣고 사랑하는 거고, 공격은 아빠한테 덤비고 아빠 말을 안 듣는 것이지.” 그러자 아이가 대뜸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그런데 아빠, 아빠는 왜 할아버지를 공경하지 않고 공격해!” 여러분, 이것을 뭐라고 합니까? 심은 대로 거둔다 말합니다. 효를 뿌리면 효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불효를 심으면 불효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님은 내 존재의 뿌리입니다.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부모님이 자녀를 잉태하면 어떻습니까? 10개월 동안 오직 뱃속에 있는 생명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몸이 아파도 약을 먹지 않습니다. 행동거지 하나라도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봐 노심초사합니다. 그리고 뼈가 녹아내리고, 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감내합니다. 어머니의 생명을 건 사랑의 결과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키우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전쟁을 겪으시고, 보릿고개의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오직 자식 하나 잘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키우셨습니다. 당신들은 제대로 잡수시지도 못하셨지만 자식들은 배고프지 않게 살도록 허리끈을 졸라매고 온 정성을 다 쏟으셨습니다. 평생 동안 다 주시고도 더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것이 부모님의 심정입니다. 그 은혜를 안다면 우리는 당연히 부모님에 대해서 자랑스러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셋째, 효도는 중요한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상줄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다른 프리미엄을 붙일 일도 아닙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말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이와 같이 상을 약속하고 부모 공경하는 일에 상당한 프리미엄을 붙여놓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병으로 누워있는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노부모가 치매에 걸려 자꾸만 집을 나가시는 부모를 공양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수다가 심한 노부모를 극진히 공양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부간의 갈등이 심한 부모를 모시기는 더욱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일은 이 세상을 가장 건강하게 만드는 첩경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삼손은 천하에 용장이었고 힘이 무척 세서 나라를 구하는 일에 존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큰 약점이 있었어요. 이방여인과 놀아나는 겁니다. 부모는 삼손을 붙들고 그러면 안된다. 정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널 쓰시지 않는다수도 없이 얘길 했지만 부모님을 무시하고 부모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 처참하게 죽음을 맞잖아요? 부모 마음이 얼마나 쓰렸겠어요? 하나님께 불효, 부모님께 불효했습니다. 불효가 다른 것이 아니에요.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불효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힘없는 부모 마음을 헤아리지도 않고 부모의 심정을 살피지도 않는 젊은이들이 참 많습니다. 어버이 날에 용돈 좀 드리고 전화 몇 번 하는 것으로 효도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이제 부모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용돈 몇 푼으로 생색내지 말고 부모 마음을 깊이 헤아리시길 바랍니다. 슬프면 위로해드리고 답답하면 시원하게 해 드리고 서운하면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독일의 문호 괴테는 노년기를 지내면서 새삼스럽게 깨달은 내용을 그의 글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노년은 상실의 삶이다. 건강, , , 친구 그리고 꿈을 잃어버리는 삶이다.’ 노년은 그동안 소중하게 생각해 온 것들을 하나씩 잃어버리는 시기입니다. 어찌 보면 자기 삶을 지탱해 준 것들 하나씩 잃어버리기 때문에 인생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그러기에 자녀가 부모의 힘이 되고 돈이 되어야 합니다. 형편을 잘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아버지~ 어머니~ 그 이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이름입니다.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속에 별처럼 살아있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부모님의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인생의 자서전입니다. 흰 머리카락은 나를 위한 고생의 여정입니다. 갈라진 손과 발은 나를 위한 영광의 흔적입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멀리 가는 향기는 바로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의 향기입니다. 그 사랑의 향기를 맡고 우리가 살았다면 이제는 그 향기를 되돌려 드려야 할 때입니다.

 

다같이 아버지 어머니의 은혜를 다시한번 가슴 속에 새기며 <어버이 은혜> 노래를 부릅니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 어버이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 기도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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