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정치다”(All is politics)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작은 것 하나 하나가 정치적이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도 되지만, 정치가 우리의 작은 삶 하나 하나에까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정치가 경제와 사회, 문화와 교육, 어느 곳 하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신앙의 삶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오늘 우리는 다가오는 20대 총선의 역사적 시점 앞에서 우리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 대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을 하고 있습니다. 수출의 저하라든지, 서민들의 삶의 무게가 정말 무겁게 여겨지는 경제의 어려움, 또 북한의 거침없는 공갈 협박의 모습을 보면서 이 민족의 미래를 이끌어 갈 지도자를 뽑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갈립니다. 심지어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까지 좌우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지도자와의 만남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지만, 오늘날 최대위기는 바로 지도력의 부재입니다. 그 지도자를 불신하는 것 중에 하나가 지도자의 부패를 들 수 있습니다. 백성에게 미래를 제시하고 희망과 용기를 주어야 하는 지도자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부와 쾌락을 위하여 백성들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지도자의 철학의 부재입니다.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삶의 원칙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나라를 다시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왜 나라를 생각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한 상당히 분명한 대답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들어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바로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 우리는 왜 나라를 생각하고 기도해야 합니까?
1-2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임금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 그 중요한 이유가 마지막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이는 우리가 경건과 단정한 중에 어떤 생활을 하여야 함이니라?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고요하다, 평안하다’하는 것은 모두 형용사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요하다 평안하다하는 이 표현들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의 일반적 삶의 정황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고요하다는 말은 소요스러움이 없는 외적인 삶의 정황을 나타내 주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평안하다는 말은 불안이 없는 내적인 삶의 정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안으로 불안하지 않고 또 밖으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삶의 정황 우리는 모두 이런 삶의 환경 속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왜 이런 환경을 우리가 요구하고 이 런 환경 속에서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것은 그저 편안히 먹고 살자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바울은 더 중요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앞에 또 앞서서 강조하고 있는 두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경건과 단정’입니다. 이 두 단어는 매우 유사하면서도 강조점에 차이가 있는 단어입니다, 우선 경건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관계에서 쓰여 지는 단어입니다. 경건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상태를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긋났을 때, 부부관계가 깨지고, 자연과의 관계가 깨지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깨지면서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환경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질 때 일어난 결과입니다.
단정이라는 단어는 인간관계를 잘 맺고 사는 상태를 말합니다. 행복은 관계에서 옵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 여러분, 혹시 부부싸움 하고 오셨다면 설교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관계가 불편하면 우리 속에 기쁨이 없습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행복, 관계의 축복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내외적으로 고요함과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삶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국회의원 선거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까? 국회는 입법부입니다. 국회가 많은 법을 제정하고 그것을 통과 시키는 정말 정말 중요한 기관입니다. 예를 들어 소수인권법의 문제가 개정 되지 않으면 우리 기독교는 정말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국가 인권 위원회 법 제2조 3호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 등에 불리한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성적 지향’ 문구는 이성애뿐만 아니라 동성애와 양성애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종교 역시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소수의 인권을 존중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위반되는 소수지인 동성애를 우리는 찬성을 할 수 없습니다. 소수지인 이단을 옹호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문제가 소수자를 보호한다는 취지 아래 국회에서 통과되면, 우리 마음을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하고, 행복을 깨뜨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기도해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이처럼 지도자의 역할, 정치인의 역할 다시 말하면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그 결정은 바로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살아가는 삶의 상황 이 어떻게 되느냐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 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인들의 액션에 무관심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누가 정치를 하느냐 여기에 무관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들이 세워지도록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이웃들과 바른 관계 속에서 한 평생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 이런 정치의 영역 속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 이 정치에 결코 무관심한 민족은 아닙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라를 위할 수 있는 최대의 방편, 최대의 방법은 뭐하는 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바로 기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1절을 같이 읽어 볼까 요?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여기 바울이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여기 첫째로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첫째로라는 말은 첫째 둘째 셋째 할 때 논리적 순서를 가르치기 위한 첫째로가 아닙니다. 둘째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여기서 첫째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선순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삶의 영역에서 우리가 많은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도로 우리가 많은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의무,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 기도의 여러가지 형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간구 그 다음에 기도 그 다음에 도고 감사 이런 기도의 여러가지 형태들이 등장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나의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비판이나 비난에는 돈이 들지 않아요. 입만 벌리면 됩니다. 우리가 쉽게 비난할 수가 있습니다. 쉽게 비판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기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기도는 일종의 노동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를 믿으십니까? 우리의 기도가 역사를 바꿀 수 있다 이 사실을 참으로 믿는다면 우리가 한나라 역사의 운명을 짊어지고 기도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바울은 그래서 그것이 우리가 첫째로 할 중요한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스코틀란드가 메리라는 이름의 여왕이 통치할 때 역사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종교는 부패했습니다. 도덕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정치는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메리 여왕 자신이 불륜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고, 민족은 우상숭배의 깊은 심연 속에 떨어졌습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이 캄캄한 민족의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엎드려서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이 스코틀랜드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아니면 차라리 나에게 죽음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한 사람은 존 낙스라는 개혁자입니다.
본래 존 낙스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이 존 낙스는 아주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이 개혁 운동을 하면서도 메리 여왕이 무서운 나머지 두번씩이나 도망을 갔습니다. 불란서로 도망을 가고 스위스로 도망을 갔어요. 그러나 이 결사적인 기도, 금식 기도하면서 완전히 변해버리고 말았어요. 그는 갑자기 아주 담대한 사람으로 변했어요. 거꾸로 이젠 메리 여왕이 존 낙스를 두려워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는 영국의 전 군대보다도 존 낙스의 기도를 더 두려워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침내 낙스는 그의 기도와 그의 투쟁을 통해서 민족을 재건시키고 개혁하는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가 있었습니다. 복음으로 민족을 구하는 위대한 사역을 성취하였습니다. 그것은 기도였습니다.
2. 왜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한사람의 지도자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다른 뜻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의 가진 영향력의 문제입니다. 만약 잘못된 판단이나 잘못된 결정이 가져 올 파장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지도자하면, 흔히 남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사람을 연상합니다. 나라의 정권을 잡은 사람, 회사의 사장, 어느 단체의 기관장... 그러나 지배자와 지도자는 엄연히 다릅니다.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고 싸워 이겨서 얻은 세상의 자리, 지배자는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지도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배자는 다스리고 군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입니다. 지도자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입니다. 우리시대의 불행이 있다고 하면 지배자는 많으나 지도자가 없다고 하는 데에 있습니다. 지도자는 언제나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합니다. 지도자는 자기는 죽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립니다.
진정한 지도력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뿐 아니라 백성의 고통과 신음소리를 듣고 그들의 아픔을 풀어주는 삶에서 지도력은 나옵니다. 바로 이런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기도에 관한 이야기 한토막이 생각이 납니다. 이차 세계대전이 마무리 되려는 시점인 1945년 4월 12일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미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갑자기 서거한 것입니다. 탁월한 지도력으로 이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던 장본인이기에 미국과 서방세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루즈벨트 뒤를 이어야 할 부통령 해리 트루먼이었습니다. 그는 시골이라 할 수 있는 미주리주 출신으로 경력도 일천하고 아직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서 거한 루즈벨트는 경제 대공황을 이겨냈고, 역사상 처음으로 세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됐고 당시 이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이런 신화 같은 존재였던 루즈벨트를 대신해서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했던 트루먼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취임 직후 기자들이 취임 소감과 국민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그 때 트루먼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서거한 순간 하늘의 달과 별, 모든 행성이 나를 향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일생에 한번이라도 기도해 본 일이 있다면, 지금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렇게 트루먼은 자기 앞에 놓여 진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을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으로 모두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1952년 국가 기도의 날을 법으로 제정하며 온 국민이 나라를 위해 함께 기도하게 했습니다. 그는 국가 통치의 중대사를 향해 기도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이 야말로 기도할 때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지금 우리가 처한 역사의 자리야 말로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시각이 아닌가요? 자리가 아닌가요?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만이 우리 민족의 새로운 출구를 열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해야합니다.
3. 기도 한다는 것은 내 주장이나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선거라는 중요한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들 중에 하나는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내 한 표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신성한 주권을 돈으로 따져본다는 것이 무리는 있지만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알아 두는 것도 우리에게 크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상에는 여러 가지 공식이 떠돌고 있지만 우리나라 1년 예산에 국회의원 임기 4년을 곱해 총유권자 수로 나눔으로써 한 표의 가치를 산출하는 방식으로 계산을 하면 한 표의 가치는 3678만여 원으로 계산이 됩니다. 한 표의 가치가 생각했던 것보다 높아 놀랍기도 합니다. 그런 중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투표에 참석을 안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늘의 정치 현실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내가 투표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겠는가’라는 생각으로 국민의 권리를 포기한다면 이 주권 포기에 대한 책임과 피해는 부메랑이 되어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옴도 알아야 합니다. 순자는 왕제(王制) 편에서 ‘군주는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君舟民水)고 했습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위대한 백성의 힘의 원천이 바로 선거입니다. 미약해 보이는 내 한 표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출발점인데도 표를 버릴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냥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참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왜 중요합니까? 우리가 정말 기도 하고 참여한다면 ‘하나님 정말 이 선거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 시고 하나님의 의의와 하나님의 섭리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소원 합니다.’ 이 땅의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고 이 투표에 참여한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신다면 때때로 나는 누구를 찍어야 할 것인가 나 자신은 혼란되어 있을지 몰라요. 그러나 우리가 정말 주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면 하나님이 이 투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 이 세워진다면 저는 우리 민족은 다시한번 제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기도해야 해요. 그래서 기도한다는 것은 중요하고 무서운 일입니다.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뜻을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 앞에 내가 따르겠다는 것이 기도의 마지막 열매예요. 지상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기도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기도를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라고 말합니다. 자, 주님이 어떤 기도를 하셨습니까?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러면 우리는 선거를 위해 기도할 때도 우리는 먼저 우리의 선입관을 비울 필요가 있어요.. 내가 생각한 후보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한번 다시 이렇게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원하십니까?’ ‘하나님,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세워지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늘의 보좌를 향해서 기도하고 투표에 임한다면 내가 찍는 사람이 안돼도 상관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은 결코 이 민족을 버리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독일에 베르린 벽을 무너 뜨리고 동독과 서독사이에 평화 통일을 가져온 것이 교회의 기도라는 것을 아십니까? 1989년 5월 동독 라이프지히 시에 위치한 유서깊은 니콜라이 교회에서는 소수의 성도들이 모여 퓨러 목사의 산상수훈 설교를 들은 후 독일의 평화를 위한 촛불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독일의 평화 통일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동서독의 지도자들이 예수 믿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기도했습니다. 동서독 지도자들의 마음가운데 평화의 열망을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독일 땅에 평화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했습니다. 기도회에 참여하는 인원은 매주 불어나 10월 9일 경찰이 집회를 방해하고 주변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차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부에만 2,000명 밖에는 약 1만 명이 모여 기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기도회를 끝내고 거리에 나와 평화행진을 시작했을 때 군중은 10만으로 불어났고 경찰은 그들에 대한 통제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한달 후인 1989년 11월 9일 베르린 장벽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너졌습니다. 무기가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총 칼이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치가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위 데모가 한일이 아니었습니다. 기도가 해 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교회는 민족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들이 있는 한 그 나라와 민족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제는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이 정말 다시한번 어두운 역사에서 빛을 가져오는 새로운 내일을 창조하기 위해서 주 앞에 엎드릴 수 있다면 우리 민족의 범죄를 회개하고 우리 자신이 주 앞에서의 모든 잘못된 삶을 다시 고치고 기도로 엎드릴 수 있다면 그리고 이번 선거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강렬한 우리 마음속에 부담을 갖고 주님을 의지하며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투표장으로 향할 수가 있다면 우리의 역사는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십시다. 주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